부처님을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이들
상월결사 인도순례가 3월12일 32일차를 맞았다. 한달을 넘어서며 피로가 누적되고 있지만, 그만큼 현지 적응도 이뤄졌다. 숙영지 생활의 불편함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간 한국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편했는지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새벽 2시30분 하르푸르 숙영지를 출발해 마하라즈간지 시내를 향하던 순례단은 중간 휴식지 바르와 비드야파티 공립학교에서 한 불자를 만났다. 65세의 삼부 프라사드(Sambhu Prasad) 씨다. 삼부 씨는 전날 한국의 스님들이 이곳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부처님 따르는 한국 순례단에 “사두와드(감사합니다)”
순례단이 도착하자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을 비롯해 순례단 스님들에게 인도식 예경을 올렸다. 몸을 바닥에 대고 스님의 다리에 머리를 대는 예경법이다. 불자들을 만나기 어려운 인도이기에 삼부 씨의 방문은 눈길을 끌었다. 삼부 씨는 “한국 스님들이 부처님 성지를 걸어서 순례하는 중이며, 이곳을 지난다는 얘기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예경의 인사를 올리러 나왔다”고 했다.
삼부 씨는 “바르와 비드야파티(Barwa Vidyapati) 사찰의 스님을 따라 열 번 정도 순례를 다녀왔다”면서도 “한국 순례단처럼 오랫동안 길게 고행의 순례를 다녀본 적은 없다”고 했다. 바르와 비드야파티 인근 마을에 100명에서 200명 정도의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매달 보름 사찰을 찾는다고 소개하고, 인도 불교를 중흥시킨 암베드카르를 가장 존경하며 다니는 사찰에서도 암베드카르의 생일 4월14일과 입적일 12월6일을 기념해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삼부 씨는 “태국의 스님들은 여러 차례 보았으나 한국의 스님들은 처음 보았다”며 “부처님을 따라 걷는 모습을 보니 매우 존경스럽고 스승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감사하다는 의미의 ‘Dhanyabad’라는 힌디어 대신 인도불교 특유의 ‘사두와드(Saadhuvaad)’로 인사했다.
“부처님 따르는 고행, 위대하게 느껴진다”
마하라즈간지 시내를 지나며 다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해가 떠오르며 드넓은 밀밭이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이 순례단의 발길을 가볍게 했다. 밀밭 한 가운데 나무 몇그루와 함께 촌락을 형성한 손느라(Sonraa) 마을 사람들이 순례단을 맞았다.
이 마을의 초키다르(Chowkidar) 람사란(Ramsharan) 씨도 구경 행렬 가운데 있었다. 초키다르는 마을 경비를 담당하는 소임을 맡고 있다. 이날도 밤새 마을을 돌며 순찰을 마치고 순례단 소식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
람사란 씨는 놀랍고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고행도 마다하지 않는 수행자들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는 “룸비니에서 한국 스님과 불자들을 몇차례 본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걸어서 순례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부처님이 걸었던 길을 걷는 순례는 위대하게 느껴진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틀 후 도착하게 될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가 가까워지고 있음이 엿보였다.
희망 섞인 기대 "인도 불교도 점점 늘어날 것"
인도에 가면 똥을 더러워하면 안된다는 말처럼 시골길은 지그재그로 내딛어야할 정도로 똥이 많다. 이제는 익숙해졌을 법하지만 순례단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길이다.
시골길을 지나며 만난 람푸르 부주(Rampur bujugh) 마을의 사치단난드(Sachchidanand Misra) 씨는 순례단이 집앞을 지나는 동안 합장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힌두교를 믿고 있지만 부처님이 탄생한 룸비니와 카트만두를 여행하며 불교는 평화의 종교이며 생명 존중의 종교이기 때문에 좋은 종교라고 박수를 보냈다.
고등학교 교사인 사치단난드 씨는 인도 내 불교가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슬람과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지금 인도에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요즘은 우리 문화를 다시 찾기 위한 움직임과 암베드카르의 새불교운동이 있어 불교도 점차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인도인의 가슴 속에는 이 땅에서 나신 부처님이 자신의 종교와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불교 순례단이 그런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희망 섞인 발언도 했다.

"암베드카르 추종…이 지역 1500명 집단 개종"
하루 전 50여명의 태국 스님들도 이 길을 지났다. 태국은 부처님 성지를 걸어서 순례하는 문화가 일반화돼 있다고 한다. 이날 우리 순례단이 걷는 길은 태국 순례단이 하루 먼저 지나는 중이다.
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라는 사티야팔 베르마(Satyapal Verma) 씨는 “매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며, “하루 전 같은 길을 지난 태국 스님들 보다 훨씬 장엄하고 부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가 사는 바가파르(Bagapar) 마을은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새불교운동을 일으킨 암베드카르의 영향이다. 인도 국기에 법륜을 새겨 넣은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는 카스트제도를 인정하는 힌두교를 거부하고 인간평등사상의 불교로의 개종선언을 통해 50만명을 한꺼번에 불교로 개종한 인물. 현대 역사상 전 세계적으로 그런 인물은 암베드카르 뿐이다.
'불교' 마을주민들 자긍심 "차별없는 평화 얻었다"
인도에서 사라졌던 불교가 다시 일어난 것도 암베드카르가 이끈 새불교운동에서 비롯됐다. 인도 전역에서 암베드카르를 추종했으나,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지역이 부처님 성지가 모여 있는 우타르 프라데시주와 비하르주다.

숙영지 인근의 바가파르에서도 36개 마을 1500여명이 한꺼번에 불교로 개종했다. 암베드카르 사후 45년이 지나고도 암베드카르는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에서는 간디 보다 암베드카르에 대한 존경심이 높다. 순례단이 이 마을을 지나는 동안 온 마을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발데브 프라사드 고우탐(Baldev Parsad Gautam) 씨는 “한국의 스님들이 우리 마을을 지나가 너무 행복하고 환희롭다”며 불교에 대한 자긍심을 표현했다. 그의 성 고우탐은 고타마 싯다르타의 ‘고타마’와 같은 성이라고 했다.
한국 순례단 소식을 듣고 꽃과 과일 등 공양물을 비롯해 휴식처를 준비했으나 안내 경찰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을을 지날 때 공양을 올리지 못해 아쉽지만, 숙영지로 찾아와 반드시 공양을 올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65세인 발데브 씨는 “이전에는 힌두교를 믿었으나 암베드카르의 ‘부처님의 인간평등 사상 만이 우리 인도를 구원할 수 있다’는 새불교운동에 따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개종했다”며 “불교를 믿기 때문에 차별이 없는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발데브 씨를 비롯한 바가파르 마을 사람들은 순례단이 지나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박봉영 편집국장 bypar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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