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4일 도영대종사 다비식 거행
법구 금산사 곳곳 돌아 노제
경내 연화대로 이운해 다비식
“어디서나 주인공으로 살라는
가르침 가슴 깊은 곳에 생생
우리 본분 다시 돌이켜 보며
수행 끊어지지 않을 것” 다짐


한평생 전법의 길을 걸으며 불교 대중화를 위해 힘쓴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금산사 조실인 금산당 도영대종사의 다비식이 11월24일 경내 연화대에서 거행됐다.
이날 오전11시30분께 영결식이 마무리된 직후, 대종사의 법구는 경내 곳곳을 돌아 연화대로 향했다. 법구를 모신 운구 행렬이 경내를 한 바퀴 도는 내내 불자들은 “나무아미타불”을 합송했다. 만장을 높이 들고 행렬을 뒤따르는 신도들도 눈물을 흘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대종사의 전법원력을 되새겼다.


대종사의 법구가 금산사를 벗어나기 직전 산문 입구에서 노제가 이뤄졌다. 영진스님과 덕산스님, 법진스님 등 문도 스님들과 금산사 주요 소임자 스님, 영결식에 참석한 불자들은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을 이어 보살행을 다짐했다.

법진스님은 노제에서 “어디서나 주인공으로 살라는 가르침은 가슴 깊은 곳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대종사가 남긴 큰 가르침과 은혜를 새기고, 이 길이 본래 자리 진여의 세계로 향도되어 지길 간절히 바란다”며 “태어나고 멸하는 모습이 가명이고, 인연의 소치인 것을 진작 알았으나 대종사님 보내는 자리에서 우리 본분을 다시 돌이켜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행은 끊어지지 않고 법맥은 멸하지 않으며, 가르침 또한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라며 “부디 편안히 가시라”고 했다.



인로왕번과 명정, 삼신불번, 오방불번, 십이불번, 법성게, 만장, 위패, 영정, 법주를 법구는 금산사 도량을 크게 돌아 다비장에 도착했다. 거화의식에 이어 다비식이 진행되는 동안 불자들은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염송했다.


도영대종사 초재는 11월26일 오전10시 완주 송광사에서 이뤄지며, 2재는 12월3일 완주 송광사, 3재는 12월10일 완주 송광사, 4재는 12월17일 대전 죽림정사, 5재는 12월24일 완주 송광사, 6재는 12월31일 완주 송광사, 49재 막재는 2026년 1월7일 김제 금산사에서 봉행된다.
도영대종사는 1942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1961년 월주스님을 은사로 금산사에서 출가·득도(得度)했다. 1961년 금산사에서 금오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0년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경운스님과 용봉스님 등으로부터 경학을 틈틈이 강학하고 1969년 3월금산사불교전문강원을 졸업했다. 통도사 극락선원, 해인사 선열당 선원, 청암사 수도암, 설악산 백담사 무긍선원 등의 선원에서 용맹정진했다. 1980년부터 세 번에 걸쳐 금산사 주지 소임을 살았고, 1986년 전주에 전북불교회관을 건립했다.

2001년 9월 조계종 포교원장으로 임명돼 불교중흥을 위해 매진했으며, 특히 신도교육 제도화, 불교문화 대중화, 포교프로그램 개발, 군불교 활성ㄹ화, 직장불자회 조직, 템플스테이 확정을 위해 노력했다. 2022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2023년 금산사 조실로 추대되어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펼쳤다.
평생 전법포교를 펼친 도영대종사는 ‘금산도영, 나고 죽음은 애초에 없더라/ 나 여기 앉았거늘, 나 여기 앉아 있거늘/ 헤아릴 수 없는 억만 겁 세월과 아득한 미래는 흘러가는 대로 둔다 해도, 나는 여전히 여기 그대로 앉아 있네./ 나고 죽는 무수한 길을 꿈결처럼 오갔고, 꿈속에서도 환인 줄을 일찍이 알았도다./ 바람과 구름의 조화는 몇 번이었고, 바뀐 것은 또 몇 번을 보냈던가.’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11월20일 오전5시20분 종남산 완주 송광사 약사전에서 원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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