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푸르에서 브랫터와까지 26km
지역 경찰서장 스님들께 장미 공양

새벽을 지나 떠오르는 해를 등지며 룸비니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단
새벽을 지나 떠오르는 해를 등지며 룸비니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단
순례단을 이끄는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
순례단을 이끄는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

31232일 차 순례는 하르푸르에서 브랫터와 까지 26km 거리에서 진행됐다. 누적 766km며 부처님께서 태어난 룸비니 입성 이틀 전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새벽 2시 도량석으로 하루를 열었다. 230분 출발하여 시카르푸르를 지나 마하라즈간지의 관공서 마당에서 아침을 했다. 관공서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무료 게스트 하우스도 갖춰 눈길을 끌었다. 시카르푸르에서는 경찰서장이 스님들에게 장미를 바치고 주민들이 발아래 머리를 숙여 존경의 예를 표했다.

장미를 공양하는 지역 경찰서장
장미를 공양하는 지역 경찰서장
아침공양
아침공양

32일 차에도 국도와 농로를 번갈아 걸었다. 전 날 보다 미세먼지가 많아 걷는 데 불편했으며, 국도는 많은 트럭이 오갔다. 간혹 맞은 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는 차 때문에 긴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여느 도시 시골처럼 순례단을 향한 시민들 반응은 뜨겁고 눈빛은 온화했다. 불자들은 고개 숙여 합장하고,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검은 차도르를 두른 이슬람인들은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순례단이 지날 때 마다 합장 인사하는 주민들과 합장으로 화답하는 순례단
순례단이 지날 때 마다 합장 인사하는 주민들과 합장으로 화답하는 순례단
합장으로 화답하는 순례단
합장으로 화답하는 순례단
합장하는 순례단
합장하는 순례단
합장하는 가족
합장하는 가족

브랫터와 숙영지는 전 날처럼 힌두사원에 차렸다. 주민들이 차양막으로 햇볕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바닥에는 먼지가 나지 않도록 카페트를 깔았다. 하루 이틀 수고로 설치할 양이 아니었다. 아마 대부분 주민이 나와 며칠 간 수고했을 것이다. 덕분에 순례단은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전 날 숙영지에서도 같은 환대를 받았다. 순례단이 묵을 힌두사원을 깨끗이 청소하고 식당에 차양막을 쳤다. 순례단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호의와 환대는 이처럼 온 몸으로 보여준다.

순례단도 주민들과 격의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처음의 어색함도 사라졌다. 주민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선물도 나눈다. 이제 저녁 예불은 동네 잔치가 됐다. 아마 마을이 생기고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가장 흥겹게 노는 최대 잔치일 것이다. 잔치를 가장 즐기는 이는 다름 아닌 순례단이다. 젊은 스님들보다 일흔을 훌쩍 넘긴 어른 스님들이 더 즐거워한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순례단을 온몸과 환한 얼굴로 맞이해주는 몸짓이 언어와 국가 종교 등 모든 벽을 허물었다.
 

31일차 숙영지에서 주민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순례단
31일차 숙영지에서 주민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순례단
31일 숙영지에서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
31일 숙영지에서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
총도감 스님도 주민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
총도감 스님도 주민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
죽비를 선물하는 자승스님
죽비를 선물하는 자승스님

소, 개, 염소와 한 집에서 사는 곤궁한 삶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넉넉해 보인다. 손님을 맞는 몸짓과 얼굴에서 그들의 풍족하고 행복한 마음을 읽는다. 그것은 부처님의 마음이다. 모든 순례단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부처님께서 왜 이 땅 인도에서 태어나셨는지, 그들의 뜨겁고 조건 없는 손님 환대와 맑은 눈에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순례단은 의문이다. 물질이 풍부하고 모든 조건을 갖췄는데 왜 모자란다고 불만인 지, 불교가 쇠퇴한 인도는 부처님이 보이는데, 세계에서 가장 체계화되고 강력한 조직을 갖추고, 부처가 되고자 수천명의 수행자가 가부좌를 틀며, 국민들이 존경하는 고승대덕이 수없이 많이 나온 한국에서는 왜 불교가 위기라고 아우성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 까?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은 30일 차에 이렇게 일갈했다. “참회라는 밭 그만 갈고 원력이라는 씨를 뿌리자. 사부대중이 함께 세상 속으로 세상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순교의 마음으로 전법에 진력하자

회향일이 가까워오면서 순례단의 마음은 하나로 모여가고 원력은 형체를 갖춰가는 듯 하다. 막연했던 방향과 목표가 점차 뚜렷해져간다. 산을 내려와 절을 떠나 길 위에 나서 사람들을 만나는 수고가 맺어준 결실이다. 회향 일주일을 앞둔 314일 발표할 상월108원력문에 한국불교가 가야 할 방향, 사부대중이 실천해야할 지침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내를 지나는 순례단
시내를 지나는 순례단
들판을 지나는 순례단
들판을 지나는 순례단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숙영지로 들어가는 순례단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숙영지로 들어가는 순례단

한편, 32일 차에 묵는 숙영지 브랫터와는 꼴리족 마을로 알려졌다. 부처님의 외가 부족이다. 강대하지만 문화 소양은 부족했던 코살라국 대신 꼴리족을 택한 죄로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는 석가족, 다음날 숙영지가 코리야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와 고향 카필라바스투가 가까워오면서 부처님의 자취도 더 짙어진다.
 

■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원을 소개합니다

제2조 비구스님 조

상월결사 인도순례단 제2조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 제2조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제2조에는 상월결사 천막결사 지원 업무부터 참가한 스님들이 있고 대부분 한국에서의 순례 동참자여서 참가열기, 순례이해도 등이 강렬했다. 한국불교 중흥의지도 남달랐다. 그러나 인도 순례에서 느끼고 배운 점은 다른 조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의 불교 조건 사회 환경이 인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데도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 등에 대한 성찰, 외적 요인에서 출발해 결국 내 안의 문제로 돌아가는 수행자 다운 성찰과 해법, 한국불교를 걱정하는 마음이 클수록 자기를 향한 원력도 강했다.
 

설도스님
설도스님

조장 설도스님(중앙종회의원, 강진 백련사 주지)
사람 몸 받고 태어나서 부처님 제자로 출가했으니, 부처님께서 나고 입멸하신 곳을 한 번은 순례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여 년 전 여행객 입장에서 서 너 차례 다녔는데, 성지가 다듬어지지 않고 흔적만 남아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상월결사 회주 어른께서 ‘결사를 해야겠다’, ‘한국불교 중흥’과 어떻게 하면 한국불교 살아날 것인가 하는 화두를 들었다는 것을 알고 여행자 입장에서 둘러본 저 역시 깊이 공감해 마침 소임이 끝나서 순례를 신청했다. 부처님께서 왜 인도에서 태어나 부처의 길을 가시고 정각 이루시고 열반에 드셨는지 100분의1이라도 느낌을 받아 감격스럽고 슬프다. 더불어 우리는 한국에서 좋은 조건에서 수행하는데도 부족하다 하고 불만을 갖고 살아가니 안타깝고 죄송스럽다. 그래서 아마 미래에도 미륵부처님은 한국이 아닌 인도에서 나오지 않을 까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부터 수행자의 모습, 수행자 생각으로 살아야겠다는 것을 너무 절실하게 크게 깨달았다. 끝으로 부처님 나라 이 땅에 큰 불사 인연이 도래하기를 기원한다.
 

원명스님
원명스님

원명스님(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상월결사 지객 소임을 맡고 있다. 2019년 천막 결사 끝나고 3월 달 국수 공양 하면서 회주 스님께서 인도 말씀 하셨다. 인도 여러 번 갔다 왔다 하니 같이 가자고 하셨다. 곧바로 코로나 시작됐으나 두 세달이면 끝나겠다 생각해서 윤사월 부처님오신날 끝내고 성대하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늦춰졌다. 6월부터 마곡사 연수원에서 예비순례 하면서 순례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본격적인 순례 훈련 시작했다. 그것이 동화사에서 봉은사까지 자비순례였다. 상월결사는 불교 중흥 의미를 갖고 있다. 걷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도불교 통해 한국불교 조명하고 전 세계 불교 중흥하자는 취지다. 불자라면 매일 해야하는 것이 뭔가라고 물으면 답이 없다. 불자는 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이게 한국불교 현실이다. 생활불교가 안된다. 생활 속에서 불교를 느끼고 살아왔다면 한국불교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불교를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데 못했다. 이것이 상월결사 숙제다.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다수 스님이 출가목적을 깨달음이라고 하고 재가자는 소원성취라고 한다. 부처님은 깨달음 이후 중생구제로 끝없는 몸부림을 치셨다. 그 삶과 가르침을 한국불교가 사부대중이 다 함께 생활불교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들만의 불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불교는 대립적이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다. 불교는 그래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 불교가 세상에 가득 차면 전쟁과 생명파괴가 없어질 것이다. 인도 순례는 그래서 한국불교 중흥에서 나아가 전세계 인류에게 생명존중 평화 화합 발원으로 귀결된다.
 

태성스님
태성스님

태성스님 (삼각산 문수사 주지)
몇 차례 버스 타고 성지를 오갔는데, 부처님도 걸으시면서 설법하셨는데 나도 걸어서 도보 성지순례를 희망했다. 상월선원 회주 스님께서 인도 도보 순례하신다고 해서 신청했다.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자는 취지에 적극 공감하면서 30년 전 강원 마치고는 덮어 두었던 책도 다시 읽고, 인도 책도 보면서 미리 공부도 했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외양간에서 사람이 사는 것 보면서 부처님 당시는 이 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하층 계급 사람들을 상대로 마가다 지방 방언으로 주로 설법했다고 한다. 그렇게 노력하셨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숙영지 생활 등으로 힘들어지기는 했는데 걷는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 순례결사가 계속 이어져 불교에 관심 많이 갖고 호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오스님
본오스님

본오스님(진주 두방사 주지, 열암곡 부처님 바로세우기 불사 도감)
스승을 따르기도 하지만 도반을 많이 따르는데 원명스님 따라서 왔다. 이 순례는 빠질 수 없었다. 마침 출가자로서 중노릇도 매너리즘 빠져 게을러졌다. 이대로 죽기에는 억울했다. 깨진독에 물을 채우려면 제 아무리 빨리 물을 담아도 안되고 독을 물에 빠트려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인도라는 물에 나를 빠트리기로 했다. 막상 실상을 접하니 옛날 부처님 재세시에 산 것 같다. 고향에 온 것 같다. 순간 순간 기쁘고 환희롭다. 열암곡 부처님 바로세우기 불사 원력 차원에서 스님들의 도움으로 제가 불상 이운을 많이 한다. 그래서 제가 주인공 같은 착각도 들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순례 이끌어주신 회주 큰 스승과도 큰 인연 있는 것 같다. 제 인생 일대사 한 획 긋는 순간이다. 쿠시나가라 마을 주민들이 우리를 맞아주고 꽃다발 줄 때 마음이 복바쳤다. 부처님 은혜 속에 살고 있는데 모르고 살았구나 생각한다. 제 고향에 와서 너무 행복하고 이끌어주신 회주 큰 스승님 감사하고 저를 이끌어주신 원명스님, 2조 도반 스님들께 감사드린다. 모든 조건이 저를 위해 세팅된 듯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
 

진오스님
진오스님

진오스님(구미 마하붓다사 주지)
지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돕는 불사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마라톤 대회가 없어져 평소 뛰던 몸이 허전했는데 걷기 순례 공고 보고 한국에서의 순례부터 동참했다. 묵언, 걷기, 텐트생활 다 좋아한다. 한국에서 순례에서 열심히 사는 분들 알게 돼 좋았고 좋은 도반들과 다시 함께 걸을 수 있어 당연히 인도에도 왔다. 부처님 경전 책으로만 배운 것 걸으면서 몸으로 확인해서 좋았다. 한국에 계신 미얀마 인도 네팔에서 온 분들이 부처님 성지 지켜준 분들이구나 감사하게 여겼다.
 

혜장스님
혜장스님

혜장스님(토굴 수행)
동안거 때 수국사 안거 마치고 선산 토굴에서 정진한다. 획일화된 참선 문화에서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고 자 동화사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회주 스님 잘 몰랐고 언론과 주변으로부터 들은 회주 스님과 직접 걸어본 회주 스님은 너무나 달랐다. 회주 스님은 실천가였다. 그 모습이 좋아서 열심히 따라다녔다. 인도에 와서 제 안의 나와 많이 대화했다. 내가 여지껏 잘 살아왔는지, 이 길을 잘 갈 수 있는지 되물어보았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왔는데 2조 도반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걱정해주어 감사했다. 차 탈까도 하다가 2조 자존심도 있고 버스 안 타고 걸어서 여기까지 와서 내심 뿌듯하다. 끝나고 난 뒤 이 길 연장에 있을지 다른 길 찾을지 모르지만 부처님 품 안에서 당당한 수행자로 서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항명스님
항명스님

항명스님(안산 쌍계사 주지)
부처님 정각 이루시고 45년간 설법하신 의미를 찾고자 해서 참가했다. 회주 스님과 순례단을 위해 준비하시고 애쓰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이 순례가 한국불교에 도움 되기를 저도 힘을 보태겠다. 우리 조원들이 이끌어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정말 감사드린다. 마지막까지 원만 회향하기를 기원한다.
 

대우스님
대우스님

대우스님(한국불교문화사업단 문화사업국장)
지객 원명스님 덕분에 상월선원 동안거 천막결사 돕다가 걷는다 하니 주변에 말들이 많았다. 직접 참여해서 보고 결정하겠다 했다. 한국에서 순례 때 ‘자자’를 했는데, 그때 회주 스님이 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않아서 한국불교 위기가 왔다는 말씀을 했다. 평소 내 생각과 일치했다. 이같은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을 갖고 한국불교 중흥에 몸 던지면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가 되겠다 생각했다. 그런 목적 아니면 걸을 이유가 없다. 그 당시 부처님은 어떤 생각하며 걸었을까? 부처님처럼 만행하며 포교했던 한국의 대덕스님 있었던가? 부처님께서는 깨달은 뒤 길에 나서서 안주하지 않고 계속 실천하셨는데 한국의 스님은 그런 실천을 하는가? 회주 스님은 몸을 던져가며 실천하고 있다. 한국불교 천년 만년 밝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한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상월결사 정진이 도약할지 모르지만 한국불교 포교 위해 어떤 식이든 참여해서 일조하겠다. 조원들 힘 아니면 저도 힘들었을 텐데 도움으로 버티고 여기까지 왔다. 이 정신 이어서 인도 순례에서 느끼고 배운 대로 참 수행자로 살겠다.
 

영일스님
영일스님

영일스님(광주 정광고 교법사)
처음 서먹했는데 잘 융화되도록 이끌어주신데 2조 스님들께 감사드린다. 전법 포교 방편으로 인도 순례 참여 기회 주신데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청소년들 가르치는 학교 교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위의와 감화다. 그런데 허깨비가 된 것 같아 참여했다. 방학 연가 다 쓰고 참여했다. 부처님 분신 되어서 부처님과 주파수를 맞춰서 부처님처럼 걸으며 바라보면서 부처님 기운 체취 몸에 체득해서 돌아간다면 불교 학교 교법사로서 매진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부처님 아바타 분신 되어서 석가모니불 정근 하면서 걷는데 힘들어지면 부처님은 어느새 빠져나가고 힘들다는 마음만 남는다. 부처님 당시보다 훨씬 조건 좋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반성하고 마음을 다 잡는다.
 

하원스님
하원스님

하원스님(영월 망경산사)
‘중물 드는 일’ 안한 것 같아서 참가했다. 어른들 질타도 받았다. 태국 미얀마 수행자 경험 하면서 발심 기회를 얻었다. 준비 없이 와서 초반 힘들었다. 자만감이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는데 수행 준비 없이 왔다. 걷는데는 익숙한데 숙영지에서 햇볕과 화장실 세면 장 적응력 떨어졌다. 순례라는 거룩한 결사 정신에 공감하고 동참하지만 작은 것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례단이 지나간 뒤 남은 쓰레기 물 남긴 것, 물건 정리 등을 현지 스탭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 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성지가 성지 답지 않다는 것은 다들 느껴 아는 바다. 성지 보존 관리도 신경 써야겠다. 단체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점은 있지만 성지에서 조용히 묵상 하는 등의 시간을 못 갖는 것이 아쉬움이다.
 

환풍스님은 묵언수행 중이다.
환풍스님은 묵언수행 중이다.

인도=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사진=박봉영 편집국장 bypark@ibulgyo.com

 

불상이운
불상이운
불상이운
불상이운
불상이운
불상이운
묵언수행 환풍스님의 휴식중 좌선
묵언수행 환풍스님의 휴식중 좌선
휴식
휴식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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