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 카필라 최단 거리, 부처님 당시 걷던 길로 순례단 행선
한국 외무부 지원, 네팔 인도 정부 협조로 전날 밤 극적 개방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에서 부처님의 고국 카필라바스투로 갔다. 부처님께서 다니셨던 그 길을 따라갔다. 불교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에게는 닫혀 있던 길이 처음 열렸다. 반드시 부처님이 다니셨던 그 길을 따라 가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던 자승스님의 원력이 한국 인도 네팔 정부를 움직였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35일 차에 일어난 기적이다.




전날 밤 까지 그 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끝내 안 열리면 인도 네팔 국경도시 소나울리에서 룸비니를 오가는 도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 인도 네팔을 잇는 주 산업도로이면서 룸비니나 히말라야를 찾는 순례객 관광객이 이용하는 길이다. 그러나 길의 주인은 차(車)다.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라 차가 다니는 큰 도로다. 부처님 당시에는 없던 길이다. 순례단 최종 목적지 쉬라바스티로 가려면 거의 200km를 우회해야한다.
네팔 정부는 룸비니에서 인도 카필라바스투를 찾는 길을 폐쇄했다. 30년 전 일이다. 네팔 정부가 주장하는 카필라바스투와 인도 정부가 주장하는 카필라바스투가 둘 있는 바람에 길이 닫혔다.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바스투는 네팔 탈라우라코트와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 바스티 지방의 피프라흐와가 서로 진위 논쟁 중이다. 학자들도 의견이 서로 달랐다.




어느 한 쪽도 완전하게 진짜를 주장하기에는 조금씩 부족했지만 별 문제 없이 오가던 국경선이 30년 전 네팔 측에 의해 막힌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 인 듯 하다. 1967년 유엔사무총장 우탄트가 룸비니를 세계 공유의 종교 문화 관광을 위해 개발할 것을 제안하고 1970년 룸비니 국제개발위원회가 결성된 후 본격적으로 조성돼 지금도 진행 중이다. 네팔 정부로서는 소나올리에서 룸비니로 향하는 주 도로를 힘들여 개발했는데, 인도 측 피프라흐와와 룸비니를 잇게 되면 그동안 개발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룸비니에서 피프라흐와는 약 14.5km 거리다. 지척인 셈이다.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를 찾는 순례객에게 가장 빠른 길이다. 부처님께서 다니셨으며 지금은 인도 네팔 주민들만 오가는 한산한 길이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도 따로 없다. 반드시 부처님 가신 길을 따라 가야한다는 회주 자승스님의 확고한 원칙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길이 뚫렸다.
순례 준비 당시부터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급기야 재외국민재난안전 과장을 파견해 순례 내내 안전과 돌발상황을 즉각 처리토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박진장관을 비롯한 외교부의 지원이 컸다. 문이 열리자 한산했던 지역이 밤새 부산해졌다. 한국의 검문소 보다 못한 초소에 차단막 하나만 있던 국경선에 네팔 인도 양국 이민국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와 출입국 업무를 열었다. 네팔은 비대면으로 출국을 허락했고 인도는 신속한 업무 처리로 순례단 행선 시간이 늦지 않도록 배려했다. 한국을 비롯한 양국 정부의 협조에다 한 달 넘는 동안 순례단이 보여준 깊은 신앙심과 순례단에 대한 인도 네팔 국민들의 뜨거운 환호, 언론의 호평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3월15일 새벽 2시30분 룸비니 호텔을 나선 순례단은 4km를 걸은 뒤 휴식을 취하고 다시 국경선을 향해 걸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인도 측 국경마을에 도착했다. 몇 시간 전 급하게 설치한 간이 책상에 직원 3명이 나와 영사업무를 보고 있었다. 네팔 측 출국 업무는 순례단이 오기 전 비대면으로 처리한 상태여서 행렬을 유지한 채 곧바로 국경을 넘어 인도 땅으로 들어갔다. 인도 측도 빠르게 여권 업무를 처리해, 순례단은 1시간 가량 양국 국경선에 머문 뒤 차량과 100명이 넘는 인원이 국경선을 넘을 수 있었다.


국경선을 넘자 총무원 총무국장 향림스님을 비롯한 9명의 총무원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부터 회향 때 까지 함께 걷고 함께 숙식한다. 순례의 결실이 종단 차원으로 회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계승하는 역할을 맡는다.

순례단은 네팔로 들어간 지 하루 만에 다시 인도 땅 우타르 프라데시주에 들어섰다. 이곳은 카크리흐와라는 지역이다. 지역 치안 책임자가 경찰들을 대동하고 안전을 지켰다. 경찰서 마당에서 다과도 베풀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줄 알았던 순례단은 지역 경찰의 환대에 놀랐다. 바닥에는 영어로 ‘환영합니다’라는 글자를 만들고 온갖 화려한 치장으로 잔치 분위기를 냈다. 바닥에는 카페트를 깔고 의자를 놓았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리다. “고타마가 타락했다”며 비난했다고 떠났던 5비구가 사르나트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이 한 약속은 “자리를 내주지 말자”였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모르게 발 씻을 물을 내어주고 자리를 마련했다. 자리는 예우다. 니란자나 강변 목동 청년도 보리수 나무 아래 부처님을 위해 길상초로 자리를 마련했다. 부처님의 후예여서 일까? 인도 사람들은 순례단에 천으로 감싼 의자를 내놓는다. 순례단 통역과 지원 업무를 맡고있는 너빈은 “인도는 오래 전부터 순례객들을 대접하는 문화 관습이 내려온다”며 “지금도 발 씻을 물을 주고 잠잘 공간을 내어준다”고 말했다. 너빈은 “순례단을 지원하는 우리 인도 직원 중에는 마을 사람들의 배려로 가정 집에서 자기도 한다”고 말했다. 너빈의 말처럼 순례단은 가는 곳 마다 환대를 받는다.



다른 경찰서 마당에서 떡국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순례단은 오전 9시 무렵 피프라흐와에 도착했다. 부처님 고향 카필라바스투에서 회향했다. 둥근 모양의 대형 스투파가 가운데 우뚝 서있고 옛날 건축물 터가 이 곳이 오랜 유적지임을 말해주었다. 1898년 이 지방 지주였던 영국인 펩페가 발견했다. 탑터 5.5m 지하에서 돌로 만든 커다란 상자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속에는 높이 15cm, 직경 10cm 크기의 사리병 4개가 들어 있었다. 사리병 가운데 1개의 뚜껑 표면에 브라흐미 문자로 “이 것은 샤카족의 붓다인 세존의 사리병으로서 명예로운 형제 자매 처자들이 모신 것이다”라는 글이 새겨 있었다. 부처님 사리를 8개로 분배할 때 샤카족이 가져간 그 사리다. 사리는 델리의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1970년 발굴 당시에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이 나왔다. 스투파북쪽 승원에서 나온 도장에 ‘이 정사는 데바푸트라가 비구 승가에 기증한 것이다’라는 문자와 함께 항아리 뚜껑 뒷면에는 ‘카필라바스투’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곳은 그래서 석가족의 후손들이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여 탑을 세우고 비구 승가가 승원을 이루고 수행했던 ‘카필라바스투’인 것이다.


그러면 네팔 카필라바스투는 무엇인가? 학자들은 네팔 카필라바스투는 부처님이 나고 자라고 출가한 곳이며 인도는 석가족이 코살라국에 멸망 한 뒤 부족이 새로 일군 신흥 카필라바스투로 본다. 네팔의 카필라바스투가 부처님이 출가했다는 성문이 뚜렷이 남아 있고 히말라야가 멀리 바라보이는 위치라는 점, 법현 현장법사의 기행문 등이 이를 입증한다.
순례단은 부처님의 외가 땅 콜리야, 태어나신 룸비니, 고국 카필라바스투를 3일 동안 순례했다. 35일 차 순례는 카필라바스투 유적지에서 회향했다. 그 옆 1km 가량 떨어진 곳에 숙영지를 마련했다. 순례단이 그동안 걸은 길은 860km다.
네팔·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 35일차 행선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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