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랫터와에서 콜리야까지 26km 행선

상월결사 인도순례 33일차, 부처님께서 피를 부르는 전쟁을 화합의 강으로 변모시켰던 로이나강을 지나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로 향했다. 떠오르는 해를 받으며 길을 가는 회주 자승스님.
상월결사 인도순례 33일차, 부처님께서 피를 부르는 전쟁을 화합의 강으로 변모시켰던 로이나강을 지나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로 향했다. 떠오르는 해를 받으며 길을 가는 회주 자승스님.

3월13일 순례 33일차는 브랫터와에서 콜리야(Kholiya)까지 26km를 걸었다. 이로써 누적 거리 792km가 됐다.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42km 전방이다. 다음날 룸비니에 도착한다. 룸비니는 네팔 영토여서 입국 수속을 밟는다. 아침 공양 전 14km를 걷고, 국경을 버스로 통과해서 룸비니 전방 10km에서 다시 걷는다.
 

33일차 행선 회향, 숙영지는 콜리야에 마련했다. 내일 네팔로 들어간다
33일차 행선 회향, 숙영지는 콜리야에 마련했다. 내일 네팔로 들어간다

오늘날 국경으로 나뉘어 부처님 탄생지 가는 길이 복잡해졌을 뿐, 부처님 재새시 기준으로는 순례단은 이미 부처님 고향에 들어섰다. 32일차에 묵은 브랫터와는 부처님 외가, 즉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친정인 꼴리야 족 땅이다. 석가족과는 로이니강을 경계로 나뉜다. 33일차 순례단은 새벽 4시경 로이니강을 건넜다. 캄캄한 밤이어서 강은 어렴풋이 보고 지나쳤다.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순례단이 하루 만에 꼴리야족 땅에서 석가족 땅으로 넘은 것이다.
 

새벽 4시 순례단은 로이니강을 넘었다
새벽 4시 순례단은 로이니강을 넘었다

로이니강은 부처님의 평화사상이 서려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석가족과 꼴리야족은 로이니 강물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다 결국 전쟁 직전까지 간다. 물이 풍부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가뭄이 오래 되면서 사달이 났다. 처음에는 말로 다투다 점차 거칠어지더니 전쟁 직전까지 간 것이다. 개인이나 나라나 사소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큰 화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께서 그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부처님은 왕에게 물었다.
"왕들이여, 물이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나가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얼마 되지 않습니다."
"왕들이여, 양쪽 병사들의 목숨과 피는 얼마만큼의 값이 나가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작은 가치의 물 때문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해친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라고 질책했다. 두 나라 백성들은 "부처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들은 서로 죽이면서 강을 피로 물들였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은혜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라고 땅에 엎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증오 속에 있지만 증오 없이’ ‘미워해야 할 사람들 속에서도 미움 없이’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자고 설법했다. 감동한 양 부족 젊은이 각 250명씩 500명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오늘날 용어로 환원하면 ‘생명존중’이다. 모든 불자들이 꼭 지켜야 할 첫 번 째 오계 불살생(不殺生)이 불교사상의 핵심이다. 부처님 탄생게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바로 생명존중 선언이다. 부처님 이전에는 하늘 위에는 신이 주인이고 땅 위는 왕이 주인이었다. 인간은 금생은 없는 셈 치고 하늘에 운명을 맡기거나 제사를 잘 모셔 그 복으로 내생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는 수동적이며 무기력한 존재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부정했다. 나를 비롯하여 모든 생명은 계급 인종 종교 민족을 떠나 평등하고 조건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선언하셨다. 고통은 다름 아닌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내가 갖고 싶으면 상대방도 갖고 싶고,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도 같이 느낀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 로이니 강물을 석가족이 필요하면 꼴리야족도 필요하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 피를 부른다.
 

합장하며 순례단을 맞이하는 주민
합장하며 순례단을 맞이하는 주민

순례단의 기치도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이다. 바이샬리 대림정사터에서 아쇼카 석주를 바라보며 천도재를 봉행한 것도 전쟁으로 귀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증오를 종식하자는 원력에서였다.

생명존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포용과 화합이다. 순례단이 걷는 길과 머무는 쉼터는 한국과 인도, 불교와 힌두교, 불교와 이슬람이 함께하는 생명 평화의 한 마당이다.

전날 32일차 저녁 예불도 지역주민과 화합의 한마당으로 떠들썩 하게 펄쳐졌다. 이 자리에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무하마드자심 치안판사는 로이니강을 사이에 두고 석가족과 콜리야족 사이에 물 분쟁이 벌어졌던 불교 경전을 사례로 들며 “바로 여기서 3km 떨어진 로이니강에서 부처님의 화합 설법이 있었다”고 소개하며 “한국 스님들이 우리 지역에 오셔서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자심 판사는 “어려서부터 지역 유산인 불교를 공부하기 때문에 그 가르침도 잘 알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자비와 사랑으로 서로 대한다면 세계평화도 금방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콜리야족 지역 주민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콜리야족 지역 주민들
순례단이 단주를 선물했다
순례단이 단주를 선물했다

이 지역 불자들은 순례단이 이운하는 부처님 전에 바나나 사과 꽃을 공양하였으며 자승스님 발 아래 고개 숙여 존경을 표했다. 자승스님도 치안판사를 비롯하여 공양 올린 불자주민들에게 직접 단주 등 선물을 증정했다.

거의 천여명 가까운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저녁 예불은 힌두어로 통역돼 주민들에게 그 뜻을 알렸다. “한국과 인도의 친선,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한국스님들의 기도”라는 말에 주민들은 열렬한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예불 후 스님들은 단주를 선물하고 주민들과 어울려 기념촬영을 하며 1시간 넘게 어울림 한마당을 연출했다.

33일차 순례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만나 본다.

 

아이들만 보면 즐거운 노스님들
아이들만 보면 즐거운 노스님들
이슬람 어린이들도 박수로 환영
이슬람 어린이들도 박수로 환영
이슬람 학교 앞을 아이들 환영을 받으며 지나다
이슬람 학교 앞을 아이들 환영을 받으며 지나다
이슬람 학교 앞을 지나는 순례단
이슬람 학교 앞을 지나는 순례단
마을을 지나며
마을을 지나며
숙영지 입구에서 꽃을 뿌리며 환영하는 주민들
숙영지 입구에서 꽃을 뿌리며 환영하는 주민들

 
오늘의 불상이운 

 

■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원을 소개합니다

제1조 비구 스님 조

1조는 인원이 많아 6명 씩 두 개 조로 나눠 진행했다. 앞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1조는 인원이 많아 6명 씩 두 개 조로 나눠 진행했다. 앞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순례단원 소개 마지막 편은 제1조 비구 스님들이다. 숫자가 가장 많고 어른 스님들이 모여있다. 회주 스님을 비롯해서 총도감 스님, 세납이 가장 많은 전 호계원장 무상스님, 동명스님, 포교원장 범해스님 등이 모두 1조다. 다른 조장도 마찬가지이지만 1조 조장의 책임과 부담은 특히 더하다. 중앙종회 부의장을 지내고 총무분과위원장인 오심스님이 조장이다.

제1조는 제2조와 더불어 상월선원 설립 취지와 순례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한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참석해 젊은 스님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노스님, 상월선원 동안거에서부터 시작하여 순례 기획부터 진행 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끄는 총도감 호산스님, 회주 스님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는 시자소임을 맡은 스님 등 다양하다. 회주 스님을 지근에서 모시거나 함께 해온 스님들은 몸이 불편한데도 늘 솔선수범하고 대중들 안위부터 챙기고 걱정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죄송한 마음을 금치 못했고, 어른 스님들은 순례를 통해 수행 생활 50여년 간 경험하지 못한 공부를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묵언수행 중인 덕조스님(은해사 주지)과 노현스님(전 법주사 주지)과 회주 자승스님, 총도감 호산스님을 제외한 9명 스님의 인터뷰를 싣는다. 인원이 많아 전 후반 두 차례로 나눠 인터뷰를 진행했다.
 

묵언 수행 중인 노현스님
묵언 수행 중인 노현스님
묵언 수행 중인 덕조스님
묵언 수행 중인 덕조스님
총도감 호산스님, 순례 전반에 관한 인터뷰가 별도로 예정돼 사진만 실었다.
총도감 호산스님, 순례 전반에 관한 인터뷰가 별도로 예정돼 사진만 실었다.
동명스님
동명스님

동명스님(서울 전등사)
인도 1200km를 도보 순례한다는 신문을 보고, 회주 자승스님 원력이 너무 아름다워서 출가인으로서 참석해야겠구나 마음을 냈다. 부처님 걸으셨던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행운이 너무 소중해서, 죽기 전에 한 번 걸어야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참석했다. 참석한다고 해놓고 보니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불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더운 인도 땅에서 1200km를 걸을 수 있을까 걱정됐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사찰 대중 모아 놓고 내가 살았던 것을 정리하고 통장까지 다 맡겨놓고 왔다. 걸어보니까 회주 스님 비롯해서 너무 신심 나고 대중들이 한결같이 진짜 부처님 길을 걷는 구나 하는 마음으로 같이 걸으니까 힘이 날로 날로 난다.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한국 가면 통장 다시 찾아야겠다. 한국 출가인들이 다 걸을 수는 없지만 부처님 제자라면 한 번 걸어야겠다는 마음 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범해스님
범해스님

범해스님(조계종 포교원장)
상월선원 일원으로 상월선원 출발과 취지에 공감하여 인도 순례까지 줄곧 함께 하고 있다. 인도까지 생각할 것 없이 한국불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종교 자체가 외면받고 있다. 불교가 사회적 역할을 소홀히 한 탓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할 때라고 본다. 회주 스님께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포교라고 하셨듯이 자기 성불 목표도 있지만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종교가 단단해질 때 자기 본분 원력 잘 실천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한국불교를 생각하면 가슴 미어지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상월선원은 결사 정신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걷고 있다. 부처님 나시고 전도하시고 열반하신 곳 성지순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 어떻게 하면 중흥할 것인가 원력을 갖고 걷는다. 인도 불교 활성화보다 급한 것은 한국이다. 한국이 처해 있는 불교 현실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와 스님들의 정진력, 한국불교 중흥원력에 관심 갖기를 바란다. 부처님 열반지를 거쳐서 탄생지 룸비니로 향해 가는 중이다. 부처님 탄생지에서 한국불교의 새로운 중흥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하며 간다. 사람들의 호응을 기대하면서 다리가 끊어지도록 열심히 간다. 우리의 결사 정신이 순례단 108인에 머물지 않고 출가인 모두가, 한국 불자라면 누구나 한국불교를 생각해서 사찰 한번 더 찾고, 스님 한번 더 찾고 경전 한 번 더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무상스님
무상스님

무상스님(전 호계원장)
인도를 오고 싶었지만 소임을 보고 있어 기회가 없다가 상월선원에서 도보 순례한다고 해서 참석할려 했는데 70세 나이 제한에 걸렸다. 회주 스님께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하도 부탁하니까 정말 갈 수 있냐고 하길래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겨우 허락했다. 그런데 동화사 자비순례를 완수해야 가능하다고 해서 참가했다. 3일 지나니까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포교원장 스님 도움도 받고 하면서 함께 잘 회향했다. 인도 오기 전 중간에 몸을 다쳐 1주일 전까지도 결정을 못했다. 주변에서도 나이도 있는데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참여했다가 실수하면 안하는 것만 못한 것이 아닌가 망설여졌다. 결국 안되면 강물에 버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하루 이틀 걸으니 인도 정부에서 이 정도까지 해줄 줄 몰랐다. 주민들이 환영해주는 것을 보면서 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힘은 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포교도 하고 경전도 공부하고 선방도 가봤지만 정말 우리 목표가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나 혼자 도피해서 잘 지내는 것은 아닌가? 많은 사람들에게 환희심 주고 신심 주는 것이 정말 포교고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의무며 공부가 아닌가? 이제까지 강원 승가대 선방 다 다녔지만 이번 만행은 어디도 비교할 수 없다. 정말 이것이 포교고 이것이 공부다. 대구 동화사에서 봉은사까지 걸을 때도 많은 공부가 됐다. 골목 골목에서 박수 치고 지역 단체장들이 와서 선물 주고 조금이라도 불편을 덜어주려 애쓰고, 정말 이 이상 포교는 없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열반당에서 부처님 가사 입히는데 내가 이번에 안 왔으면 내가 감히 부처님께 가사를 어떻게 입힐 수 있었을 것인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렀다. 이번 참여 참 잘했다. 한 걸음 한 걸음 포교고 내 자신에게 수행이다. 못 살았던 일, 잘 살았던 일 내 자신 경책하는 기회도 됐다. 순례 마치고 선방 한 철만 더 나고 모든 것을 정리할 생각이다. 만행에 참가하게 해주신 회주 스님, 총도감 스님 등 힘 없어 힘들어 할 때 도와준 제1조 도반 스님들에게 감사드린다.

 

1조 후반 인터뷰 모습
1조 후반 인터뷰 모습
연공스님
연공스님

연공스님(화엄사 금정암)
순례단원 중 법랍이 가장 짧을 것이다. 늦은 나이 인연돼 출가해서 금정암 소임 보는데 회주 스님께서 오셔서 인도 순례를 추천하셨다. 초기 1주일은 장염으로 7kg가 빠졌는데 주변 스님들 도움으로 회복했다. 차 타고 다녔을 때는 인도가 낙후했다고 봤는데 걸으면서 보는 인도는 아름다웠다. 보드가야에서부터 부처님 오도송을 팔리어로 암송하면서 걷는다. 순례단에 참가해서 너무 좋고 감사하다. 시자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회주 스님을 제가 챙겨야 하는데 거꾸로 회주 스님께서 저희를 챙겨주신다. 정말 죄송하다. 당장 잘 챙겨드리겠다.

 

인산스님
인산스님

인산스님(수좌)
상월결사 회주 스님 시자 소임이다. 그런데 몸이 불편해서 시자 본분을 잃어버렸다. 어른 스님을 불편 없이 모셔야하는데, 오히려 제가 보살핌을 받고 도움을 받았다. 저를 걱정하고 살펴주시는 회주 스님, 똑같이 살펴주시는 대중 스님들, 챙겨주시는 어른 스님들, 조장 스님, 저와 시자 소임을 같이하는 연공스님, 그 베풀어 주심이 바로 부처님 마음임을 배웠다, 대중에게 민폐를 끼친 점이 가장 마음 무겁고, 털어내지 못한 미안함이 남아있다. 더불어 제가 살아온 것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다. 부처님은 왜 이 길을 걸었을까, 무엇을 마음에 담고 귀에 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며,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할 것인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심스님
오심스님

오심스님 (조장, 중앙종회 총무분과위원장)
인원이 제일 많고 회주 스님도 계신 제1조 조장 소임은 시봉이며 복짓는 일이라 생각하며 재미있게 하고 있다. 선광스님이 많이 지원해주신다. 운동을 좋아해서 몸은 별 탈 없고, 어른 스님들께서 힘을 보태주셔서 감사하다. 열심히 잘 보필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 삼보사찰 순례 통도사 회향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눈물을 흘려 전국적으로 울보 스님 됐다고 연락 왔다. 절에서 평생을 살아서 스님들이 형, 삼촌, 동생 같다. 인도는 주지 하면서 매년 11월에서 3월까지 무조건 왔고, 14번 째에 이어 이번 15번 째도 회주 스님을 모시고 오는 인연을 가졌다. 한 발 한 발이 즐겁고 기쁜 마음이다. 불교는 못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수한 교리와 깨달음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불교이므로 상월결사 구호대로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면 한국불교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심우스님
심우스님

심우스님(중앙종회의원, 고불암 감원)
상월선원 결사 당시 아홉 스님 중 한 명으로 참가했다. 수좌로만 살다가 총무원 소임 맡다 보니 항상 좌복 정진을 그리워했다. 상월결사 한다고 해서 동참했다. 그 90일간은 제가 겪어보지 못했던 선원 정진이었다. 선방에서 그동안 안일하게 살았구나 참회했다. 그런데 회주 스님께서는 솔선수범하셨다. 다리가 아픈데도 한 시간도 안 빠지고 정진하시는 것을 보고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상월선원 결사 마치고 인도순례를 한다고 해서 아홉 스님 중 한 명으로 마지막까지 회향하겠다 해서 삼사순례 준비 다 마치고 이번에 참석했다. 그런데 오기 직전 제일 친한 도반이 심장마비로 입적했다. 평생 선방만 다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반인데 너무 마음 아프고 힘들어서 오지 못할 상황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사제가 생사기로에 서게 됐다. 너무 힘들었지만 아홉 스님의 마지막 결사는 인도가 회향이라 들어왔다. 걷다 보니 부처님 대자대비가 얼마나 깊고 얼마나 중생을 사랑하는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부처님 당시도 지금처럼 인도인들의 삶은 열악하고 척박했을 것이다. 그 가여운 중생들에게 인연을 지어주고 80노구로 중생 곁에 계신 그 대자대비한 마음을 뜨겁게 느꼈다. 회주 스님에게서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 무릎 허리 안 아프신 데가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항상 웃고 항상 대중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부처님의 대자대비와 같다. 내가 어디 아프다 말을 할 수가 없다. 한국불교를 위해 저렇게 고생하시는구나 감동을 받는다. 제1조 함께 걸어가 주는 도반들, 대중들 있기에 걷는다. 혼자는 못 걸었을 것이다. 대중들은 언론을 통해 보는 독자들 격려에 큰 힘을 얻는다. 한국불교 발전과 포교에 나의 남은 일생 보태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 다짐한다.
 

선광스님
선광스님

선광스님(하남 성불사, 종교편향대책위원회 불교특위원장)
인도는 매력적인 나라다. 성지를 다니면서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회주 스님께서 인도를 걷는 순례를 하자고 해서 지원했다. 국내에서 걷기 행사 할 때마다 참석했다. 걸으면 육신과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인도에서 부처님 전법의 길을 대중과 수행공동체로 참석해서 매우 뜻 깊다. 성지 올 때마다 참혹하고 불교 부흥 기미가 없을까 고민했는데, 이번에 와서 인도의 종교관은 모르지만 인도 사람들이 성지를 많이 찾는 것을 보고 부처님 가르침이 다시 일어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 선진국 한국이 인도에 지원하고 포교하면 인도불교도 한국불교도 부흥할 것이라 확신한다.
 

종호스님
종호스님

종호스님(동국대학교 부총장, 상주 남장사 주지)
불교 중흥 한 마디에 무슨 일이 있어도 참가해야겠다 해서, 부총장을 사임하고 참석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인류 평화로 나아가는 위대한 지침인데, 부처님 태어난 곳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유적으로만 남아 부처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고 홍포해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인도=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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