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시나가르에서 지친 신심 정비 마치고
인도순례 한 달째 네팔로 향하는 순례단

3월10일 상월결사 인도순례 30일차는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로 향한 첫 걸음이다. 순례단은 5일 뒤인 3월14일 네팔 룸비니에 도착한다.
전날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 마지막 유훈을 낭송하며, 불제자로 원력을 새로 다진 순례단은 쿠시나가르 소재 호텔에서 이틀을 지내며 밀린 빨래와 목욕을 하며 지친 심신도 정비했다. 3월10일 새벽 2시 기상해 2시30분 쿠시나가르 시내를 빠져나갔다. 쿠시나가르의 새벽은 가로등을 환하게 밝혀 낮처럼 밝고 깨끗했다. 순례단은 열반당 정문 앞에서 골목길을 통해 시내를 빠져나갔다. 잠깐 국도를 걷던 순례단은 대부분 한적한 시골길을 경유지로 잡았다.
쿠시나가르에서 배두울리를 거쳐 두바울리에서 아침 공양을 했다. 평소보다 발걸음이 빨라져 예상보다 30분 가량 이른 5시30분, 일출 전이었다. 서울 봉은사가 며칠 전 공양한 컵라면이 3시간 동안 14km를 걸어 배고프고 지친 순례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침 공양 후 두바울리를 출발해 나라연푸르를 거쳤다. 옆으로 수로(水路)가 일직선으로 난 제방길을 한참 동안 걸었다. 어느 구간은 빨간 벽돌을 깔아 마치 아스팔트 길 같았고 어느 구간은 흙이 두껍게 깔린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잠깐 차도로 들어섰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나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번에는 농로(農路)를 지났다.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가는 아주 좁은 길이었다. 흙먼지가 펄럭이는 농로를 지나 세마라에 도착했다. 이날 하루를 묵을 숙영지다. 망고나무가 숲을 이루고 옆에는 개울이 흐르는 아름다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흙먼지와 오염된 개천을 서식지 삼아 들끓는 모기는 피하고 싶은 큰 장애다.
3월로 접어들면서 낮에는 35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날씨에 순례단원들의 체력 소모도 커졌다. 성한 사람도 쉽지 않는 터에 순례 초기 무릎을 다쳐 버스로 이동했던 현조스님이 다시 길 위에 섰다. 아직 성치 않은 상태라 지팡이에 의지한 스님은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완주했다. 간신히 발걸음을 옮겨야 할 정도로 불편하지만 전체 대중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님은 온 힘을 다해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과 장삼이 땀에 흠뻑 젖었다.
완주 후 스님은 ”17일간 버스를 타다 보니 근육이 빠져 7일 용맹정진에 동참하기 위해 무리지만 걸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처음 다칠 때 연골이 찢어져 디딜 수 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스틱에 의지해서 걸을 정도는 됐다“며 ”오늘 붓지 않고 괜찮으면 계속 행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조스님은 “신묘장구대다라니 주를 하면서 걷는데 다리 고통이 왔다가 사라졌다가 고통에 생각이 이탈하는 등 힘들긴 힘들었다”며 “그렇지만 걷는 동안 포기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완주를 격려하고 상처를 살펴보기 위해 찾아온 3조 조장 법원스님은 ”7일 정진 때 함께 하기 위해 힘든 상황인데도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걸었다“며 “오늘 제일 긴 거리를 걸어 완주했다. 많은 격려 바란다”고 위로했다.
이날로 순례를 시작한 지 한 달을 맞았다. 2월9일 서울 조계사에서 종정 예하를 모신 가운데 고불식을 봉행하고 인도에 도착한 순례단은 10일 사르나트 녹야원 초전법륜지에서 입재식을 봉행하고, 14일인 2월22일 부처님 성도지 보드가야 마하보디 대탑에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법회를 봉행했다. 3월1일 21일차에 근본사리탑과 첫 여성 출가지 바이샬리에서 전쟁, 지진 등 각종 재난과 나라 민족을 위해 생명을 마친 호국영령 등을 위한 천도재를 봉행하고, 3월4일 24일차에 부처님 발우를 모신 케샤리야 대탑을 거쳐, 29일차에 열반지 쿠시나가르에서 기도법회를 봉행했다.
순례단이 거쳐 갈 남은 성지는 탄생지 룸비니와 고향 카필라바스투, 가장 오랫동안 머물며 전법했던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 등 3곳이다. 순례단은 30일차에 27km를 걸어 누적 716km가 됐다.






현지에서도 불교 유적지 발굴·보전에 최선
“순례단 방문 계기 UP주 예산 반영”
부처님 유적지 발굴 예산도 포함돼
상월결사 인도순례가 30일차를 맞은 3월10일, 순례단은 쿠시나가르에서 룸비니를 향했다. 룸비니까지 남은 거리는 150여km. 하루를 꼬박 걸었으나 여전히 쿠시나가르 관내 말루카히(Malukahi)의 힌두사원에 숙영지가 마련됐다.
이날 숙영지를 찾은 비나이 프라카스 가우르 UP주의회 의원은 대변인 종호스님을 만나 숙영지에서의 생활을 물으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비나이 의원은 한국불교 순례단에 대한 인도정부 차원의 지원 방침에 따라 UP주에서의 호위, 경비, 숙영지 마련, 물 및 화장실 문제 해결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월결사 인도순례에 대한 인도정부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나이 의원의 이날 방문은 숙영지에 대한 지원 점검과 순례단 민원 해결을 위함이다. 그러나 순례단은 순례기간 내내 불편함이 있더라도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 불편함 역시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며 감내하고 있다.
순례단의 감사 인사를 받은 비나이 의원은 “우타르 프라데시주는 이번 한국불교 순례단의 43일간의 여정을 계기로 불교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발굴·보전의 필요성도 높아졌다”며 “당장 순례단 지원과 불교유적지 발굴조사를 위한 예산이 주의회를 통과해 배정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의원은 또 “부처님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한국의 스님과 불자들에 대한 경외심은 곧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1000km가 넘는 인도 부처님 순례길을 걷는 한국불교 순례단에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박봉영 편집국장 bypark@ibulgyo.com
■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원을 소개합니다
제4조 비구 스님 조

4조에는 탄자 돌림스님이 많은 점이 특이하다. 탄묵스님, 탄무스님, 탄호스님, 탄하스님, 탄학스님이다. 종회의원이며 강릉 용연사 주지 설암스님이 조장이다. 평소 도보로 부처님 성지 순례를 갈망해 일생 일대의 기회로 여기고 참여했다는 스님이 많고, 어려운 길을 대중과 함께한 덕분에 이겨냈다며 감사하게 여겼다. 순례를 마련하고 이끌며 어려운 길을 몸소 걷는 회주 스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했으며, 한국불교 중흥을 고민했다. 인도의 환경 문제, 청소 문제를 지적한 점이 다른 조와 달랐다.

조장 설암스님(강릉 용연사 주지)
한국불교가 총체적 위기라는 인식 속에서 이를 극복하는 방안 중 하나로 상월결사 정신이 나오고 그 구체적 실천행으로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가는 순례가 나왔다. 전적으로 이에 동의해서 참석했다. 이번 순례가 한국불교 중흥을 이루고 세계적으로는 전쟁 기아 지진 등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를 환영하는 인파와 그들의 눈빛과 내 마음을 비견하는 시간이 되었다.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도 많았다. 케샤리야 대탑에 들어섰을 때 내 능력이 부족해서 부처님 흔적이 저렇게 방치돼 있고 복원 능력이 없는데 자괴감도 들었다. 참사람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정한 자유인지 생각하며 걸었다.

제정스님(해인사 종회의원, 진주 응석사 주지)
구법승이 목숨을 걸고 부처님 성지를 순례했듯이 미얀마, 방글라데시를 거쳐 인도 순례를 하려 했는데 방글라데시에서 멈출 수 밖에 없어 무척 아쉬웠다. 부처님 가신 길을 혼자 가려고 했지만 치안, 풍토병 등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듯 싶었다. 대중과 함께 부처님 가신 길 순례가 회주 스님 덕분에 마련됐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무문관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참가했다. 43일 대장정 중에 열흘까지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적응되었다. 새벽 행선이 상쾌하고 좋다. 부처님 가신 길, 신라 구법승 선대 스님이 걸은 길이라고 생각하니 새로운 감회다. 우리는 개인 짐을 차로 싣고 가는데 당시 스님들은 자기 짐을 지고 갔을 것이다. 육로 실크로도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공기오염과 수질오염이 심한데 공기는 국경이 없으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일화 정신을 살려 인구 대국 답게 공기 청정에도 신경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탄묵스님(안성 운수암)
인도에 와서 너무 기뻐고 행복하다. 인도에 정말 오고 싶었다. 부처님이 위대하다는 찬탄을 느낀다. 천리길 인도 순례를 앞두고 걱정 많았는데 대중들이 열심히 걷다 보니 나도 저절로 여기까지 왔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이 실감 난다. 함께 걷는 스님들에게 감사하고 부처님이 위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탄무스님(관악사 주지)
인도에서 부처님 길을 걷고 싶었는데 회주 스님 덕분에 올 수 있었다. 부처님 발자취를 걸어서 갈 수 있어 몸은 힘들지만 정말 좋다. 쉽지 않은 여정을 많은 스님과 가게 돼 편하게 간다. 청정하지 못한 길거리가 청정해졌으면 좋겠고, 부처님 자취가 방치돼 있는데 제대로 보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탄호스님(논산 관촉사 주지)
30여년 전 출가해서 부처님 나라 고향에 가고 싶어 국가 안보교육도 받고 인도 성지를 어렵게 왔었다. 불자들과 몇 번 왔다가 인도에서 부처님 행적을 그대로 찾아서 가는 순례가 있다 길래 여기 참여 안 하면 평생 후회하고 아쉬워할 것 같아서 참여했다. 너무나 뜻 깊고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3~4일 동안은 보이는 것마다 쓰레기에다 인분, 똥, 원시인 같이 사는 모습으로만 보였다. 그 날이 지나고부터 그 당시에도 이 환경에서 살았고 이 환경 속에서도 길을 걸으며 법을 전했구나, 나와 인연 있는 사람 하나 하나 생각하면서 그 분들에게 이익과 안락을 주면서 부처님처럼 걸어야 겠구나, 그 때부터 본 마음을 챙겼다. 기억 못했던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기도하면서, 부처님을 주력하면서 걸었다. 매일 행복하게 걷고 있다. 이번에 참여 안 했으면 제 인생사에 큰 오점을 남겼을 것이다. 상월결사 회주 스님께 감사드린다. 이같은 행사는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스님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자의 수준에 이르러야 대중 이끌고 이런 길 걸어갈 수 있다. 한국에 새로운 존자가 탄생했다.

도림스님 (중앙종회의원)
이번 순례의 참여 동기는 현재 여러 타성에 젖어 있는 한국불교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고 이제는 스님들 스스로가 우리 사회 약자들을 위한 헌신적 포교를 담당해야 한다는 회주 스님의 원력에 전적으로 공감이 돼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당신의 모국으로 친히 점지하신 인도라는 나라를 온몸으로 배우고 체험해보고 싶은 설렘으로 매일 한 발 한 발 걷고 있다. 이번 순례에서 더 없이 인상 깊은 건 이 나라 사람들의 눈망울과 미소에서 느껴지는 묘한 안락함이다. 2700년 전 살아생전 부처님의 법향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상상이 되어 순례 내내 가슴 벅차다. 이처럼 환희로운 경험을 갖게 해주신 회주 스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금까지는 별 탈 없이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데 이게 다 대중들의 세심한 외호와 보살핌 덕분이다. 마지막까지 모두가 아픈데 없이 성만 회향하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한다.

탄하스님 (의성 정수사)
사부대중과 인도 성지 순례 동참하게 돼 영광이다. 20여년 전 혼자 배낭여행 할 때 고행을 많이 했는데 부처님 성지를 걸어 가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다 회주 스님 인연으로 사부대중 함께 참가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 순례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을 챙겨볼 좋은 기회가 됐다. 회향까지 잘하겠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건강 체질을 타고 났구나 생각했는데 몸이 굉장히 아팠다. 감기 몸살에 물갈이하면서 몸이 안 좋아 앰블런스 타기 직전까지 갔다. 의료진이 탑승을 요청했지만 어른 스님이 묵묵히 걸으시는데 젊은 내가 그래서 되겠나 싶어 견디면서 몸과 마음을 챙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몸이 아픈 것은 전생에 제가 업을 많이 지어 억장이 녹아 내리는 것으로 여겨 눈물이 났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이었다. 회향까지 잘하겠다.

보월스님(상주 용담사 주지)
19년 전 적멸보궁을 도보로 걸식하며 참여했다. 그 때 부처님 나라 인도에 도보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원력을 냈는데 그 원력이 성취돼 큰 영광이다. 15년 전 인도에 처음 왔다. 은사 스님 환갑 때 모시고 다녔다. 당시 첫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것을 느꼈다. 긴 도보 순례를 갈 수 있을까 염려해서 원만 회향 기도를 많이 했다. 특별히 몸에 장애는 없는데 두 다리에게 탈 없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기도한다. 남은 시간 우리 스님들이 함께 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탄학스님(청도 적천사 주지)
인도에서 회주 스님 모시고 걷게 돼 영광이다. 회주 스님은 늘 어려운 불교 현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신다. 그 원인이 우리 스님들의 나태 안일에 있다고 늘 경책하셨다. 회주 스님께서 어려운 걸음을 직접 하시면서 스님들을 인솔하시고 몸소 걸어가는 의도와 부처님께서 이 길을 걸어가신 뜻이 같다고 본다. 회주 스님의 경책과 뜻을 이해하고자 부처님이 왜 이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지 몸소 걸어보고 싶었다. 길을 걸으면서 왜 부처님이 자신의 평안함과 안락을 버리고 나섰는가 책으로만 대하고 이론으로만 이해하다 몸으로 겪으니 확실히 알게 됐다. '자등명 법등명' 말씀하신 뜻도 나름대로 알게 됐다. 내 자신에 의지하지 않고는 주인이 아닌 종으로 살기 때문에 나태해질 수 밖에 없는 인도 현실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부지런해지고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서 부처님께서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말씀 하신 것으로 보았다.

문종스님(강릉 등명낙가사 총무)
삼보사찰 천리순례 때 알게 돼 참가하게 됐다. 걸을 때마다 좋았다. 예전부터 트래킹을 해서 걷는 걱정은 없었고 대중 스님과 회주 스님을 모시고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부처님을 모셨던 기억을 부처님께서 아실 것이다. 부처님을 한국 상월선원에 모신다 하니 다시 찾아 뵙고 예를 갖출 때 당시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를 듯하다. 뿌듯하고 내 걸음의 의미 깊어져 너무 좋았다.
사진=박봉영 편집국장 bypark@ibulgyo.com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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