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가 걸어온 길

상월선원 천막결사는 2019년 11월11일부터 이듬해 2월7일까지 90일간 무문관 정진을 했다.
상월선원 천막결사는 2019년 11월11일부터 이듬해 2월7일까지 90일간 무문관 정진을 했다.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아...
90일 간의 동안거에 10만 결집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아 수행 정진하는 상월선원(霜月禪院)의 시작. ‘만행 결사 인도 순례’의 뿌리는 4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제33대,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은 총무원장 소임을 내려놓고 2019년 11월11일부터 이듬해 2월7일까지 90일 간 무문관 정진을 했다. 예기치 못한 행보였다. 불교가, 수행자가, 세상과 멀리 떨어지지 않고 중생 곁에서 먹고 자며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하겠다는 뜻이 읽혔다.

상월선원 90일 정진은 이른바 천막결사로 불렸다. 위례 신도시에 임시 법당을 마련해 시멘트 바닥에서 비닐 천막 보호 아래 9명 스님이 겨울 안거를 났기 때문이다. ‘상월선원 천막결사’라 명했지만 말 그대로 ‘풍찬노숙(風餐露宿)’과 다름 없었다.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잠을 잔다’는 뜻 그대로 스님들은 노천에서 먹고 자며 겨울 안거를 났다. 회주 자승스님, 선원장 무연스님, 입승 진각스님, 한주 성곡스님, 지객 호산스님, 지전 재현스님, 정통 심우스님, 시자 도림스님, 다각 인산스님 등 9명 스님이 참여했다. 씻지 않고 묵언하며 하루 한 끼 공양과 14시간 정진을 했다.

천막결사 소식이 알려지자 기대와 우려가 쏟아졌다. 이전까진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편에선 불교 수행의 새로운 모습이 될 것이라 기대했고 또 다른 한 편에선 지키기 힘든 청규를 다 수행하며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했다. 기대와 우려 속 90간의 안거가 무사히 끝났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초등학생부터 팔십 노보살까지, 종교계 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10만 명이 다녀갔다. 산중에만 있던 불교가 세상과 한 층 가까워졌다는 평이 따랐다. 당시 회주 자승스님은 “무문관 두 철을 나고 천막결사를 회향하고 느낀 건 사부대중이 함께하면 불교가 중흥된다는 것이다”며 “불교의 주인은 스님이 아니라 사부대중이며, 스님과 불자가 하나의 공동체가 돼 일으켜야 한다는 게 내가 가진 확신”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순례’ 첫 의지 드러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늘길 막혀

부처님 성지를 오로지 두 발로 걷겠다는 ‘인도순례’가 처음 언급된 건 천막결사 회향 후 3개월이 지나서다. 상월선원 총도감 호산스님과 지객 원명스님은 2020년 5월21일 동국대에서 간담회를 열고 천막결사에 이어 ‘상월선원Ⅱ 만행결사’로 인도와 네팔을 순례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30km를 걸어 총 1080km 거리를 사부대중이 함께 오직 두 발로 걷겠다는 계획이었다. 차근차근 진행됐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불투명 상황에서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도 네팔 순례를 계획했던 시기인 그 해 가을, ‘상월선원 만행결사’ 순례단은 2020년 7월27일부터 공주 태화산 한국문화연수원 예비 순례를 진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 위협 속에서 그 다음 택한 것이 바로 ‘불교 중흥·국난극복 자비 순례’ 500km 대장정이었다.

자비순례 동참 대중 82명. 이들은 2020년 10월7일 대구 동화사에서 출발해 텐트에서 자고, 길에서 공양하며 하루 30km 안팎을 행선하는 고행에 나섰다.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 사부대중이 모두 함께 천리를 걸었다. 구미 신라불교 초전지에서 낙단보 마애불, 문경새재, 서울 봉은사를 거쳐 결사의 시작점인 위례 상월선원을 다시 찾았다.

머무는 곳마다 환대였다. 코로나로 고통받는 중생을 위로하고 한국불교를 위해 어려운 길을 자처한 순례단을 위해 수많은 사부대중이 순례단을 찾았다. 일일 동참자도 점점 늘어났다. 대구 경북, 충청, 경기 지역 스님과 불자는 물론 지역 국회의원과 시장, 군수 등도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순례길에 나서기도 했다.

삼보에 대한 예경과 중흥의 원력으로
전쟁에 대한 아픔 보듬으며 평화순례

천막결사를 거쳐 자비순례로 이어지는 대장정은 이듬해 ‘삼보사찰 천리순례’로 세 번째 걸음을 뗐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프로젝트 핵심은 ‘삼보’. 불교 세 가지 보물인 불법승을 대표하는 송광사를 시작으로 해인사를 거쳐 통도사에 이르기까지 423km, 1077리를 걸어 삼보사찰을 모두 걷는 여정이었다. 청규는 여전했다. 걷는 내 묵언으로 행선하고 휴대폰 사용은 금지되며 오로지 걷는 행위에만 마음을 둘 것, 100여 명이 길에서 먹고 자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다.

정혜결사가 시작된 송광사에서 참가 대중은 “자기 수행과 대중 화합의 새로운 불교운동을 실천하겠다”며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전법과 포교의 길이 우리 땅에 똑같이 살아 있음을 환희심으로 체험하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보종찰 통도사를 지났다.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로 인해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국민을 위한 치유와 희망의 발원을 이어갔다.

2021년 ‘삼보사찰 천리순례’ 마지막날인 10월18일 불보종찰 통도사에 도착한 순례단이 통도사 금강계단을 참배하고 있다.
2021년 ‘삼보사찰 천리순례’ 마지막날인 10월18일 불보종찰 통도사에 도착한 순례단이 통도사 금강계단을 참배하고 있다.

‘움직이는 불교, 찾아가는 불교
적극적인 불교’ 위한 쉼없는 걸음

세 번째 프로젝트를 마친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은 같은 해 11월11일 ‘상월선원 만행결사 2주년 기념식 및 삼보사찰 천리순례 회향식’에서 또 다시 ‘기본’을 이야기했다. 당시 자승스님은 “상월선원 만행결사는 현재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극복해보고자 하는 것”이라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하지 않으면 한국불교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천리순례로 회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이듬해 평화순례로 이어졌다. 2022년 3월23일 제22교구본사 대흥사를 시작으로 교구본사 순례에 나선 순례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가 환란에 빠지자 평화를 발원하며 또 다시 길을 나섰다. 순례길을 걷는 것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구호 캠페인도 전개했다. 대흥사를 시작으로 4월 월정사, 5월 백양사, 7월 법주사, 8월 은해사, 10월 화엄사로 이어진 순례에는 매회 1000여 명 동참자가 함께 하며 눈길을 끌었다.

상월결사가 사단법인으로서 공식 출범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평화방생순례를 마친 뒤 상월선원 만행결사는 12월18일 ‘사단법인 창립총회’를 봉행하고 이사장으로 자승스님을 선출했다. 당시 자승스님은 사단법인 상월결사 설립의 취지는 ‘포교’에 있음을 특히 강조했다.

드디어 열린 ‘인도로 가는 길’
1200일 전 결사 다짐 그대로

인도로 가는 길이 2023년 드디어 열렸다. 천막결사 회향 후 1200일 만의 일이었다. 조계종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상월결사가 주관하는 상월결사 인도순례가 2월9일 서울 조계사 고불식을 시작으로 43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2019년 천막결사에서 시작된 불교 중흥을 위한 인도 순례가 드디어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싹을 틔우게 된 것이다.

슬로건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 모든 존재가 존중받고 존엄한 세상을 만들자는 다짐이었다. 인도 사르나트 녹야원에서 2월11일 순례를 시작한 순례단은 1167km, 삼천리를 걸어 3월23일 서울 조계사에 다시 섰다. 108명, 단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모두가 모였다. 냉기 서린 바닥에서 먹지 않고 씻지 않고 정진했던 상월선원 만행결사의 다짐이 비로소 실현되던 날, “움직이는 불교, 찾아가는 불교, 적극적인 불교를 기치로 한국불교 중흥을 이루겠다”는 오랜 기다림이 결실을 맺은 날이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저희의 맹세가 헛되지 않다면, 이곳이 한국의 붓다가야가 될 것입니다.”

‘불교 중흥’, 단 네 글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마다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이자 대중 곁으로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었던 원력이었다.

[불교신문 3761호/2023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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