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km 도보순례 후 위험한 도로서 차량 탑승
40km 추가 이동 숙영지 도착…누적 488km

상월결사 인도순례 20일 차, 2월의 마지막 날인 28일 새벽 2시 도량석으로 하루를 연 순례단은 2시30분 파트나를 향해 길을 나섰다.
도로는 전 날 보다 더 위험했다. 화물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이 2차선을 끊임없이 오갔다. 인도의 차들은 비상등 대신 경적을 울려 경고를 했다. 차량 종류 불문, 밤낮 구분 없이 끝없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는 도보순례 중인 순례단에게 큰 고통이었다. 그저께 밤, 어제밤, 이틀밤을 새벽 까지 틀어놓은 음악인지 소음인지 모를 고성에 대부분 잠을 설쳤는데, 이번에는 경적이 괴롭힌다. 휴게소가 없어 도로 갓길은 트럭이 점령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좁은 2차선이 더 붐볐다. 순례단은 어쩔 수 없이 정차 중인 트럭과 움직이는 차량 사이를 아슬하게 한 줄로 서서 지나야 했다. 설상가상 그토록 열심히 차들을 통제하고 뛰어다니던 경찰들도 나란다에서 파트나 가는 길을 책임진 경찰은 마치 순례단이라도 된 것처럼 함께 걷는데 열심이었다.
노후 차들이 내뿜는 매연과 모래 흙 먼지가 잔뜩 깔린 도로 사정도 순례단을 힘들게 했다. 한국 인도 수교 50주년 기념하는 마크가 새겨진, 순례단 공식 마스크는 5km 가량 걸어 휴식을 취할 때 쯤이면 입 주변이 새까맣게 변한다. 차들이 내뿜는 매연 때문이다. 마스크는 사방에서 침투하는 정체 모를 냄새도 방어하지 못한다.
울퉁불퉁 패이고 자갈이 튀어나온 흙길도 만만치 않지만 거칠게 질주하는 차량 곁을 통과하는 국도 도보는 더 긴장된다. 선두와 후미 좌우에서 행렬의 안전을 책임지는 지원단은 그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야한다.

잘 포장된 넓은 도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행렬이 안정을 찾아가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좁은 비포장 흙길이 나타난다. 짐 실은 대형 트럭은 그대로 오가는데 길이 바뀌다 보니 도로는 순식간에 차들로 뒤엉킨다. 맨 앞에 가는 불상을 모신 트럭은 오도 가도 못하고, 차량을 통제하는 인도 경찰 차량도 고립되고 만다. 이쯤되면 지원단은 ‘멘붕’ 수준이다. 아직 사위는 캄캄한데 손전등에 비친 불빛 사이로 먼지가 어지럽게 춤을 추고 한 줄로 가던 행렬은 헝클어지고 경찰은 어디로 갔는 지 보이지 않는데 서로 먼저 가겠다며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경적소리 만 요란하다. 19일, 20일 차 새벽 행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좁은 비포장 길을 간신히 빠져나오자 여명이 밝아온다. 도로 사정이 나쁘다 보니 아침 공양 시간도 평소 보다 늦었다. 아침 공양 전 보통 14km 가량을 걷는데, 전 날은 19km, 20일 차에는 16km를 걸었다.
그런데 더 큰 장애가 나타났다. 바이샬리를 가기 위해서는 비하르 주도(州都), 파트나를 지나야한다. 파트나 까지는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순례를 시작하고 고속도로는 여태 지나지 않았다. 법적으로도 고속도로를 사람이 통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동한다 해도 파트나 도심을 통과하기가 불가능하다. 트럭 승용차 릭샤 까지 좁은 길을 꽉 막아 10km를 가는데 1시간이 걸릴 정도로 교통 사정이 최악인 데다 원숭이가 떼로 출몰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도심을 벗어난다 해도 8km에 이르는 갠지스 강을 잇는 간디대교도 심각한 장애다.
결국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이 결단을 내렸다. 전 일정을 도보로 걷고 싶어하는 순례단의 원력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순례단 스스로 예방하고 조심해서 방지할 수 있는 위험도 있지만 불가항력도 있다. 아무 일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요행(僥倖)을 기대하고 강행할 수는 없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차량을 탑승해 고속도로와 파트나 도심, 간디교를 지났다. 40km 가량 달리는데도 1시간 30분이나 걸릴 정도로 도로 혼잡이 심했다. 지체된 시간 대부분이 파트나 시내를 통과하는데 걸렸다.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대부분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짓누르는 눈꺼풀을 지탱할 수 없다. 새벽 2시에 일어나 16km를 쉼 없이 달렸으니 내려앉는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게보다 더할 것이다. 걸으면서도 조는 형편이니 달리는 차 안에서 졸음과의 싸움은 애초부터 싸움 자체가 안된다.
버스 덕분에 평소보다 1시간 가량 일찍 숙영지에 도착했다. 20일 차에 묵을 숙영지는 하지푸르라는 지역의 힌두교 사원이다. 보드가야에서 수자타 마을로 건너갈 때 밟았던, 네란자나 강에 쌓여있던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흙 위에 텐트를 차렸다. 오늘은 흙먼지와 지내야한다. 닦아도 소용 없음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다.
3,1 절에는 바이샬리를 간다. 25km 거리다. 비구니 교단이 처음 생긴 곳,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안거를 보내셨고, 제2결집이 일어난, 경전에 나오는 밧지국이다. 20일차로 총 488km를 이동했다.







인도 비하르 주=박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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