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성 수닷타 탑 참배 후 귀국 준비, 순례단 가슴에 안긴 부처님 조계사도 함께 입장

순례 마지막 조장회의를 마치고
순례 마지막 조장회의를 마치고

도보 순례는 전날 기원정사에 입성해 회향식을 열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순례단 일정은 23일 조계사 회향식이 마지막이다.

320일 회향식을 마친 순례단은 저녁 공양후 쉬라바스티 한국 사찰 천축선원에서 순례단 전원이 회향 소감을 발표하고, 무사히 마친데 대해 부처님께 감사하고 순례도반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하는 시간을 보냈다. 2시간여에 걸친 소회에서 순례단은  불교가 다시 피어나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한국불교 변화 이전에 자신의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그 변화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전법과 수행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한 스님은 비록 행색은 초라해졌지만 마음은 더 당당해지고 무한한 자긍심을 갖게 됐다는 소회를 밝혀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도보 정진은 불교 신자로서 믿음이 더 단단해지고 불자로서 자긍심을 갖는 데서 나아가 함께 고행하고 서로를 격려해준 도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강한 신뢰를 갖게 했다. 이러한 자신감 자긍심이 한국불교중흥에 나서는 힘을 갖게 하고 그 성공을 확신하는 자신감을 배양했다.

편안한 밤을 보낸 순례단은 다음날 짐을 꾸려 귀국행을 준비했다. 우타르 프라데시 주 수도 럭나우로 가서 비행기로 델리로 가는 일정이다.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한 순례단은 사위성으로 가서 수닷타탑과 그 옆에 함께 있는 앙굴리말라탑을 참배했다.

수닷타 장자 탑을 도는 순례단
수닷타 장자 탑을 도는 순례단
앙굴리말라 탑을 도는 순례단
앙굴리말라 탑을 도는 순례단

수닷타는 부처님 당시 강국 코살라의 대부호로 부처님을 존경하고 불법에 귀의하여 기원정사를 지어 부처님을 모셨으며, 급고독(給孤獨)이라는 별칭에서 보듯 최고의 자선사업가요 불교사 최고의 우바새다. 반면, 앙굴리말라는 희대의 살인마로 부처님 마저 살해하려다 교화를 받아 불법에 귀의한 뒤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수닷타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출발도, 사람 됨됨이도 달랐지만 불법을 만난 뒤에 후대에 성인으로 추앙받는 결론은 같다. 두 사람의 탑을 나란히 조성한 것도 불법(佛法)의 수승함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닐 까? 부처님 법은 바다처럼 넓고 깊어 깨끗한 물은 물론 오염된 더러운 물도 깨끗하게 정화해 하나로 만드는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며 최상의 진리임을 보여주고자 한 뜻인지 모른다.

참배를 마친 순례단은 41일간 성지를 함께 순례한 부처님과 인도에서의 작별을 고했다. 인도에서 조성한 백불은 한국에서 만든 목불과 함께 부처님 성지 전역을 돌았다. 대형 불상인 백불은 트럭에 실려 행렬 맨 선두에서 인도시민들에게 부처님 오심을 가장 먼저 알렸다. 차량에서는 힌두어 안내 방송이 나와 거리의 시민들은 순례단이 걷는 뜻을 알고 집 안에 있다가도 달려나왔다.

그 뒤에는 목불이 따랐다. 목불은 순례단 전원이 가슴에 안고 성지를 전부 돌았다. 이 불상은 지난해 회주 자승스님이 제안을 해 이뤄졌다. 부처님 전법의길을 따라가니 부처님을 모시고 가자는 안이었다. 스님은 안고 걷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무게가 덜 나가는 목불로 조성할 것이며, 크기 등을 제시했다. 이렇게 조성된 불상은 사르나트 녹야원에서 입재식을 마치고 가장 먼저 회주 자승스님이 가슴에 안고 출발했다. 뒤이어 총도감 호산스님, 1조 조장 오심 스님이 이어받았다.

인도 부처님을 먼저 보내며
인도 부처님을 먼저 보내며
사위성에서 회향
사위성에서 회향

불상 이운은 처음에 스님들만 하다가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순례이므로 우바새 우바이도 동참하라는 회주스님의 제안에 따라 이태경 우바이조(7) 조장을 시작으로 8(우바새) 까지 동참했다. 최초의 여성출가지인 바이샬리를 입성할 때는 비구니스님들이 맡았다.

불상 이운은 여러 번 동참한 스님도 있고, 힘이 부쳐 한 번 밖에 못한 스님도 있다. 불상 이운은 해가 뜨는 아침 공양 후부터 4~5명이 번갈아 가며 맡았다. 캄캄한 밤에는 잘못 발을 디뎌 다칠 수 있어서다. 본오스님은 열암곡 부처님 세우기 불사 도감을 맡아 원력 차원에서 매일 이운을 자처했다.

불상 이운은 이운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행복을 선사했다. 불상을 이운한 소감은 한결같았다. “무거울 줄 알았는데 가벼웠다” “내가 부처님을 안고 성지를 가다니 이런 행운이 올지 정말 몰랐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걸어가는 줄도 의식 못했다그리고 다들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불상을 모시고 부처님 성지를 가는 그 인연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감동과 종교적 신심을 심어준 것이다.

불상이운은 유튜브 방송 신문 지상 등을 통해 본 불자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순례단을 구경하던 인도주민들도 불상에 가장 많은 관심과 예경을 표했다. 스님에게 합장을 하지 않는 이들도 불상은 어김없이 합장하고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 인도인들이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생전에 가셨던 길 전부를 순례단 가슴에 안겨 함께 돌았던 불상은 이름이 생겼다. ‘상월부처님이다. 상월부처님은 올 때처럼 비행기에 실려 순례단과 함께 한국으로 간다. 조계사 회향법회에도 순례를 돌 때처럼 순례단 가슴에 앉아 입장한다. 회향법회가 끝난 후 부처님은 조계사 대웅전으로 옮겨 329일 까지 신도와 시민들이 친견할 수 있도록 한다. 330일부터는 42일 까지는 불교신문이 주최하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전시장으로 이동해 공개 친견할 수 있다.

총도감 호산스님은 모든 사람이 모시고, 부처님이 가셨던 모든 성지를 다닌 부처님은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영험 인연이 지중해 간절하게 모셔야겠다는 대중들의 바람을 담고, 참여는 못했지만 인도 순례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또 부처님을 잘 모시는 것이 상월결사 원력을 증장하는데 힘이 될 것이라고 보아서 친견 기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수닷타 탑 앞에서 순례단의 환송을 받은 백불은 크기와 무게로 인해 배편으로 한국에 간다.

순례 도보 정진 회향과 함께 이름을 얻은 상월부처님처럼 회향과 함께 이름을 새로 얻은 또 한 명이 있다. 한국방송(KBS) 부처님오신날 특집 제작차 순례단에 합류한 성수일피디가 320일 순례를 마치고 회주 자승스님을 친견한 자리에서 불교에 귀의했습니다고 고백했다. 성피디는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가 무교 상태였다. 그는 스님들을 인터뷰하고 카메라를 들고 같이 걸으면서 순례 전 과정을 촬영했다. 특히 인터뷰 과정에서 불교에 대해 감명을 받고 좋아져 불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회주스님은 “43일 순례에서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다 해서 사삼으로 법명을 지었다날짜를 잡아서 정식 수계하겠다고 수닷타 장자 탑 앞에서 공개했다. 회주스님은 사삼거사에서 보듯 순례 정진이 많은 감동과 희망을 준다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말했다.

"불교에 귀의합니다" 사삼거사라는 새 이름을 얻은 성수일피디가 회주스님 옆에서 소감을 전하고 있다.
"불교에 귀의합니다" 사삼거사라는 새 이름을 얻은 성수일피디가 회주스님 옆에서 소감을 전하고 있다.

사삼거사로 태어난 성수일 피디(62)는 한국외대 81학번으로 대학 졸업 후 KBS에 입사, 주로 교양 다큐멘터리 분야 연출가로 활약했다. KBS 대표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 ‘6시 내고향등을 연출했다. 걷기를 좋아해 정년 퇴직을 했지만 인도를 도보 순례하는 다큐멘터리라는 말에 제작진 합류를 요청해 카메라를 들고 3명의 후배들과 함께 취재단에 들었다. 성피디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함께 걸었으며, 행선이 끝난 후에도 늦게까지 숙영지에서 인터뷰를 하는 등 순례 내내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그 열정이 불교에 귀의하는 인연이 되었다. 성수일피디는 "인도 오기 전에는 부처님께서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고귀한 분으로 알았는데, 순례단을 인터뷰하면서 부처님은 제 앞에 있고, 제 뒤에 있으며, 저 옆에도 계셨다"며 " 서서히 스님들 말씀을 통해 가슴에 불심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불교 귀의 인연을 밝혔다.

KBS가 제작한 상월선원 인도순례는 527일 부처님오신날 낮 12시에 방영된다.

두 탑 참배를 끝으로 부처님 성지 순례는 모두 마무리됐다. 석 대의 버스에 분승한 순례단은 179km 떨어진 우타르 프라데시 주 수도 럭나우로 향했다. 4시간여를 달려 호텔에 도착한 순례단은 저녁 공양 후 마지막 조장회의를 갖고 인도 일정을 공식 매듭지었다. 321일 상월결사 인도순례 41일차는 도보는 없었지만 순례의 인연공덕이 참으로 지중하고 위대함을 몸소 느끼는 시간이었다.

순례단은 다음날 우타르 프라데시 주 총리 주관 오찬에 참석해 순례가 무사히 진행되도록 물심양면 도와준데 대해 감사 인사를 한다. 이어 비행기 편으로 델리로 가서 밤 비행기로 한국으로 향한다.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한 줄로 서서 가는 순례단. 조계사 우정국로에서도 이같은 행렬로 입장한다
한 줄로 서서 가는 순례단. 조계사 우정국로에서도 이같은 행렬로 입장한다

■ 조계사 회향법회 어떻게 진행되나

323일 상월결사 인도순례 회향법회에서 순례단 입장 순서 방식이 확정됐다. 32141일 차 저녁 순례단은 이를 공식 발표했다.

321일 오후 1시경 조계사와 우정국로에서 15천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회향법회에서 순례단은 인도 순례처럼 안행(雁行)으로 입장한다.

다만, 회향법회에서는 상월결사의 취지와 순례 의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입장 순서 인원 등을 조정했다. 인도에서 순례는 회주스님이 앞에서 이끌었지만 조계사에 들어갈 때는 맨 선두에 20대 남녀 대표가 인도한다. 여자는 26세의 정유림순례원이, 남자는 25세의 조석주 전 대불련 회장이 각각 상월결사 인도순례’ ‘사부대중 전법포교가 적힌 깃발을 들고 입장한다.

그 뒤를 부처님 이운조가 따른다.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불교 취지에 맞춰 우바이(이태경 7조 조장), 우바새 (정충래 8조 조장), 비구니(묘수스님, 6조 조장) 비구(본오스님, 최다 불상이운)를 대표한다.

본대는 8조가 가장 앞선다. 8조 주윤식 중앙신도회장을 선두로 7, 6, 5, 4, 3, 2, 1조순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회주 자승스님이 맨 뒤에 들어간다. 인도에서 순례가 앞에서 이끌었다면 회향 법회는 뒤에서 미는 형식을 띠는 것이다. 순례단 본대를 이어 순례를 지원한 지원단과 함께 걸으며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기자단이 뒤를 잇는다.

조계사 일주문에 순례단이 도착하면 총무원장스님이 순례단을 맞으며 함께 조계사를 들어간다. 법회는 삼귀의 반야심경 경과보고, 총무원장스님의 환영 꽃다발 증정 순으로 진행한다. 꽃다발은 비구대표로 포교원장 범해스님, 비구니 대표 묘수스님, 우바새 대표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우바이대표 이태경 7조 조장이 받는다. 이어서 축사, 총무원장스님 말씀, 회주스님 봉행사 순이 이어지며, 인도 순례 7일 정진 입재 때 발표했던 상월 108원력문에 맞춰 108배를 한다.


■ 순례 지도부 3인 인도 순례 회향을 하며

도보 순례는 20일 끝났지만 인도 순례는 다음날 까지 진행됐다. 21일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 도착한 뒤에야 모든 일정이 막을 내렸다. 마지막 조장회의가 끝나고 총도감 호산스님, 순례단장 원명스님, 대변인 종호스님, 박기련 운영지원단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조계사 회향법회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고 소회와 감사인사를 했다.

 

총도감 호산스님
총도감 호산스님

총도감 호산스님 
상월선원 인도순례가 사고 없이 원만하게 회향하는 것이 총도감 소임자로서 발원이자 목적이었다. 배탈 장염 허리 다리 등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무사히 회향한 순례 대중에게 감사를 드린다.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때로는 질책하고 때로는 격려와 배려로 이끈 분이 회주스님이다. 경책 할 때는 싸늘하게 정신 번쩍 들도록 하셨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그 심정을 잘헤아려 조절해주셨다. 이처럼 대중의 원력 의지와 지도자의 탁월한 지도와 인도 덕분에 낙오없이 모든 대중이 회향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

상월선원 취지 모르고 오직 순례가 목적이었던 분들도 반철이 지나면서 마음이 하나로 모여졌다. 회주스님에 대한 의례적 감사 인사가 나중에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께서 목욕하신 카쿠다 강을 지날 때 꽃비가 내리면서 상월선원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쿠시나가라 열반당에 도착하면서는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금생에 하나 밖에 없는 순례에 동참하게돼 개인적으로 감동이고 가슴이 벅차다.

순례단장 지원단장 미리 답사하고 인도 정부와 협상도 하고 정말 많이 애썼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했다. 나인성 이사가 로드길 만드는데 정말 수고했다. 세 번 네 번 확인했는데도 하루 전날 또 가서 확인하고 그 노력을 잘 알고 있다. 기자들도 하나가 되었다. 몸 힘든 것도 잊고 뛰는 것을 보고 순례단도 감동하며 더 힘을 냈고 그렇게 우리 모두 하나가 되었다.

<금강경> 무대 기원정사에서 금강경 구절처럼 무유정법을 느꼈다. 정해진 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상황에 따라 주인이 됨을 이번 순례에서 깨달았다.

순례를 이끌어주신 회주스님의 남다른 지도력 통찰력과 신장이 되었던 대중들, 그리고 부처님 영험 받아 잘 회향했다.

 

회주스님과 기념 촬영하는 대변인 종호스님
회주스님과 기념 촬영하는 대변인 종호스님

대변인 종호스님 
2,3
일 한번 인도 방송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왜 걷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생명존중과 한인 수교 50주년 기념,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순례 취지를 널리 알렸다.

순례가 양국발전 세계 평화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중생 속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에 도움되는 불교가 순례가 기점이 돼서 세계평화 인류 행복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많이 했다. 인도 매체를 통해 우리 순례 의미 취지가 잘 전달되고 한 인 양국 우호 친선이 더 깊어지도록 노력하고자 했다.

 

순례단장 원명스님
순례단장 원명스님

순례단장 원명스님 
인도 비하르 주, 유피(UP) 주, 네팔 등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순례가 성공리에 끝났다. 정말 고맙다. 외교부 주 인도 한국대사관, 정부가 신경 써줘서 순탄하게 진행했다. 거듭 감사드린다.

환영식을 준비하시는 총무원장 스님을 비롯해서 교구본사, 중앙신도회등 각 급 신도회에도 감사드린다. 애써준 기자단에도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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