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예비순례 원만 회향
120여 명 25km 전원 완주

죽비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의 순례단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자 상월선원 총도감 호산스님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발열 체크 먼저 하겠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마스크는 꼭 착용해주시구요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해 주십시오. 백담계곡에 진입하면 불빛이 하나도 없으니 랜턴은 반드시 켜주셔야 합니다. 청규에 따라 휴대폰 사용은 금지됩니다.”
9월3일 새벽3시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 가사 장삼을 수한 스님들 뒤로 재가자들이 한 줄로 따랐다. 상월선원 만행결사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앞두고 사전 점검 차 예비 순례에 나선 길. 120여 명의 적지 않은 인원이 가로등의 어스름한 불빛과 달빛에 의지해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었다. 숨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자 순례단 어깨 너머로 백담사 일주문이 눈에 들었다. 사찰 어디에서나 제일 먼저 마주하는 일주문이지만 이곳은 보다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상월선원 만행결사를 이끄는 회주 자승스님이 지금의 만행결사를 만든 곳, 무문관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자승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8년 임기를 마친 뒤 곧바로 백담사 무문관에서 동안거에 들었다.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 속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겠다”던 자승스님은 이듬해 상월선원 만행결사를 결성했다. 움직이는 불교, 찾아가는 불교, 적극적인 불교를 기치로 한국불교 중흥을 이루겠다는 뜻이 읽혔다. 의외의 행보였다.









천막결사, 자비순례, 천리순례 등 그 다짐이 벌써 3년째 이어지면서 뜻을 같이 하고 싶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번 예비순례 참가 의사를 밝힌 이들만 120여 명.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참가 인원을 제한했음에도 단 하루만이라도 참가하고 싶다며 곳곳에서 모였다. 이번 ‘삼보사찰 천리순례’ 대장정 주제가 ‘포교’인 만큼 포교원장 범해스님을 비롯해 종단 주요 소임자 스님도 대거 참석했다.
순례단이 25km를 걷는 동안 순례단 선두에 섰던 포교원장 범해스님은 “몸이 힘들어도 한 달 뒤로 예정된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생각하면 크게 힘들지 않다”며 “삼보사찰 순례를 통해 우리 불자들이 삼보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새기고 스스로 자랑스러운 불자라는 확신으로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예비순례단은 이날 인제 만해마을에서 백담계곡을 거쳐 백담사까지 12km를 걷고 다시 13km를 되돌아 걸었다. 걸을 때마다 찌릿찌릿한 발바닥 통증과 체력 저하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포기자는 없었다. 백담사에 도착해 극락보전을 참배한 순례단은 일반에 개방되지 않은, ‘문 없는 문 무문관’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유나 영진스님을 비롯한 백담사 대중이 점심 공양을 비롯해 따뜻한 환호로 순례단을 맞았다. 묵언 속에서도 내설악 천혜의 경관인 백담 계곡을 보며 감탄하는 순례단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순례는 순례였다. 익숙지 않은 환경 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 달빛에 의지해,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을 온 몸으로 맞으며 묵묵히 걷는 고단함은 피할 수 없었다. 낭만적인 산책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걷던 순례의 길은 삼보의 의미를 다시 새기기 위해 스스로 택한 구도의 여정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온 몸으로 알았으리라. '삼보사찰 천리순례'의 원만 회향을 위해 마음을 낸 그 순간이, 발길 닿는 곳마다 이미 '불국토'였음을.





인제=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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