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들이여! 두루 다니도록 해라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2021년 삼보사찰 천리순례.
2021년 삼보사찰 천리순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성도, 전법, 열반하신 곳을 찾아가는 것은 선택 사항이다. 그 지역을 두 발로 묵언 순례하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는데 드디어 떠난다. 혼자서 추진할 수 없는 일이 진행되고 있어 “뜻을 모으면 할 수 있다”는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동력이 느껴진다.

누군가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새로운 도전이 앞으로 삶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덥고 습도 높은 날씨에 입안이 마르고, 흘린 땀을 식히거나 제대로 씻지 못하더라도, 더러는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먹는 것이 힘들더라도, 어깨가 쳐지고 발바닥이 고통스럽더라도 나는 감내하기로 선택했다.

‘타고난 능력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애쓰는 이 보다 즐기는 사람이 마지막 승자’라는 말이 있다. 불편하겠지만 받아들이면 공부의 기회가 되고, 불평만 하면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길을 향하는 순례자는 즐겁게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2023년 토끼해가 밝았다. 우주의 질서는 수십 억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서서히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드러내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주 자연의 생성, 조화, 파괴의 흐름을 헤아리고, 중생의 번뇌를 살펴 그 해결방법으로 팔정도를 일러주셨다. 귀의 삼보의 첫 번째가 완성된 것이다. 위대하신 분, 존경을 받을 분, 공양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 80생을 보내신 그 땅을 참배하는 인연은 소중하고, 가슴 뭉클하게 한다.

고백하건데 나는 걸어서 인도순례를 갈 생각이 없었다. 비용과 시간에 대한 부담도 컸다. 그런데 지난 2020년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 봉은사, 2021년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걸었던 스님들과 불자님들의 용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걷기 순례에 동참하냐?”고 들었을 때 “오로지 걷고, 묵언하고, 텐트에서 지내는 세 가지 청규를 실행한 곳이 따로 있나?”고 되물으며 “<금강경>에서 상(相)을 내지 말라 하셨지만 지금 시대는 상을 내어도 좋으니 자비나눔을 실천하라”는 범어사 무비 큰스님의 법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출가자로서 혹은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역사적 근거가 분명한 성스러운 곳을 걷고, 먹고, 자고, 찾아가는 순례는 세계불교사에 드문 흔적을 남길 것이다. 마침 2023년은 한국과 인도, 두 나라의 수교 50주년이다.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필요한 시점에 두 나라의 우호증진에 도움이 되는 민간외교 역할도 기대된다.

또한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인도의 아유타국 허황옥(許黃玉) 공주가 금관가야 시조인 가락국 수로왕(首露王)과 결혼을 해서 열 명의 아들을 두었기 때문에 이번 인도순례는 사돈(査頓) 국가의 방문이며, 인도로부터 직접 경전이 전래된 불법인연에 대한 보은행(報恩行)이 된다.

1100km를 넘는 거리를 완보하려는 인도 순례자들은 “무엇 때문에 가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져야 한다.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러 중동 지역으로 자기 비용을 들이고, 휴가를 내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붉은악마를 기억한다. 16강 진출의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뜨거운 열정을 보았다. 선수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과 간절함에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 열정을 불교의 용어로 원력(願力)과 같다고 생각한다.

초기 근본불교의 <자애경(慈愛經)>에서는 “서서나 걸을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깨어있는 한 자애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거룩한 삶이다”라고 쓰여 있다.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장애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는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말씀도 확 와 닫는다.

100여 대중의 참여 동기는 다르다. 같을 수 없다. 앞에서 이끄는 선배 스님과 애쓰는 분들의 지향점을 선택하거나 안 할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선택에 대해 억지로 야단스럽게 하거나 왜곡하려는 행동은 정당하지 않다.

와서 보고 참여해 판단하는 것이 어떨까? 추진하는 쪽은 비판에 대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조심할 일이며, 보여주기식이라고 배척하는 쪽에서는 괜한 미움으로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따져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은 치우친 주장으로 비추어지게 된다.

불교 교단은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구성체이기 때문에 서로의 주장을 낮추고,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없다면 유지될 수 없다. 알면서 실천못하는 것이 중생세계이니 각자 알아서 행동하자.

인도 순례자와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부대중의 공동운명체이다. 떠나는 선택을 한 이는 교만해서는 안 된다. 자신감을 가져야 하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은 멀리해야 한다.

체력이 딸려도 신심으로 이겨내고,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우왕좌왕하더라도 원력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신심과 원력은 열정을 지켜내는 디딤돌이기 때문에 어려운 순간이 닥칠수록 대중화합의 힘으로 모든 것이 극복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승가(僧伽)라 한다. 승가공동체는 불보, 법보, 승보의 세 가지 보물의 하나이며, 세 사람 이상의 화합된 무리는 중생의 귀의처가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붓다가야에서 세나니(將軍村·장군촌)마을로 약 320km를 걸어가신 전도선언(傳道宣言)을 되새겨 읽는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아가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이 세상에 대한 자비심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유익과 안녕·행복을 위해 두루 다니도록 해라.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같이 가지 마라. 그래서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이 법을,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 법을 선포하라…(중략)”<상윳따니까야>

위대하신 분의 전도선언은 사부대중 승가공동체의 존재 이유다. 두루 다니도록 이끄신 것은 법(法)을 실천하는 것이요, 가르침을 선포하는 것은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교화(敎化)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인도순례의 발걸음 역시 더 나은 세상 만들기를 위한 세상에 이득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방향이 옳거나 최소한 목표 지점이 같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25전쟁에 도움을 준 나라와 코리안드림을 갖고 이주해 온 노동자, 결혼이민자의 출신국가를 달리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전했던 나의 탁발 마라톤과 인도 걷기순례는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나의 선택은 기대가 된다. 가자~! 인도로!

진오스님구미 마하붓다사 주지사단법인 꿈을이루는사람들 대표
진오스님
구미 마하붓다사 주지
사단법인 꿈을이루는사람들 대표

[불교신문 3749호/2023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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